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이와모토 나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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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만화책 즐겨읽기 171] 이와모토 나오,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1)》

 


  풀벌레가 한창 노래하는 한여름입니다. 저녁과 밤과 새벽에 풀벌레 노랫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마을은 조용한 시골이기에 자동차나 가게나 기계 소리가 아닌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도시에서 흘러넘치는 소리를 들을 텐데, 나는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에서 흐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렇게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와 멧새 노랫소리만큼,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노랫소리는 얼마나 잘 듣는가 궁금합니다.


  한밤에도 31도까지 이어지던 날씨가 수그러듭니다. 봄과 첫여름을 지나 처음 27도 28도 29도가 될 적에는 이런 밤날씨에 어떻게 살아낼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30도 31도가 되는 한여름 밤을 지내고 보니, 30도 밑으로 떨어진 밤날씨가 참 시원스럽구나 싶어요. 처음 29도가 되던 한여름에는 찌는 듯해 땀이 줄줄 흘렀으나, 31도 밑으로 안 내려오던 밤날씨가 수그러들면서 30도나 29도가 되는 밤날씨가 참 괜찮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러다 문득, 내 몸은 이렇게 날씨를 느끼지만, 내 마음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내 몸은 덥구나 춥구나 좋구나 궂구나 하고 느낀다지만, 내 마음은 무엇을 느끼거나 받아들일까 궁금합니다.


- “유채꽃이 장난 아니네?” “유채꽃이 아니라 겨자거든? 먹으면 꽤 맛있어. 최근에 편의점 생겼는데 들렀다 갈래? 어차피 다른 가게도 없으니까.” (6쪽)
- “오빠, 이 마을에 고등학생 이상의 젊은이는 우리 셋밖에 없으니까 사이좋게 지내자.” (9쪽)


  마을마다 아이들이 거의 안 삽니다. 마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기 일쑤입니다. 아이들도, 아이들을 낳는 어버이도, 으레 마을을 떠나 면소재지나 읍소재지에서 살거나, 아예 도시로 나아갑니다. 도시는 나날이 커집니다. 면소재지와 읍소재지는 차츰 작아집니다. 마을은 더욱 조용해집니다.


  마을에 집이 없거나 땅이 없기에 어린이와 젊은이가 떠나지는 않습니다. 마을에서 흙을 일구며 살거나 바다를 껴안고 살 때에 돈이 안 나오기 때문에 모두들 도시로 가지는 않습니다. 도시에는 사람들 몸을 스물네 시간 내내 건드리거나 이끄는 무언가 있습니다.


  시골에는 사람들 몸을 건드리거나 이끌 만한 무언가 없을까 헤아려 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마다 달리 느낄 텐데,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스스로 느끼려 하면 느끼고, 스스로 느끼려 하지 않으면 못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거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날 무렵이면 도시 문화와 문명과 물질에 익숙해집니다.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은 모두 도시에서 만들고, 교재나 교과서나 책은 온통 도시 이야기입니다. 시골에서 예쁘게 살아가며 예쁘게 꿈꾸는 이야기를 다루는 보육시설이나 교육시설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곰곰이 돌이키면, ‘숲 유치원’도 ‘바다 초등학교’도 ‘멧골 중학교’도 없다 할 만합니다. 숲을 느끼는 유치원은 얼마나 있을까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유치원은 둘레에 널린 숲에서 아이들하고 부대끼려 할까요. 바닷가에 있는 초등학교는 가까운 바다를 아이들이 껴안도록 이끌까요. 태백산이나 지리산 둘레 중학교는 멧자락을 오르내리는 삶을 아이들이 어깨동무하도록 가르칠까요.


  어릴 적부터 도시살이에 익숙한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도시에서 돈을 버는 일자리’만 생각하고 맙니다. 직업훈련이란 도시에서 회사나 공장을 다니도록 이끄는 직업훈련이지, 시골에서 흙을 만지거나 바다를 얼싸안는 직업훈련이 아닙니다. 멧나물을 뜯거나 숲을 보살피는 직업훈련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아니, 도시에서조차 작은도시는 큰도시로 가도록 내몰고, 큰도시라 하더라도 더욱 커다란 도시로 가도록 떠밉니다. ‘시골 고등학교’가 없고, ‘나무 대학교’가 없어요.

 

 

 


- ‘(오랜 벚나무 꽃잎을 흩날리는) 그 바람은 내 마음속의 ‘잘 선택했을까?’란 의구심과 ‘어쩔 수 없지’란 체념을 어디론가 아주 멀리 날려버린 듯해다.’ (32쪽)
- “쌍방향에서 차가 올 때 반드시 어느 한쪽은 기다려 준다거나 길에서 만난 고등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거나, 그런 곳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니까요. 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76∼77쪽)
- “그래도 갔다 와, 형. 풀죽어 돌아와도, 지금이라면 어느 집에 들어가든 따뜻한 밥 한 끼는 내줄 거야. 형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거든.” (114쪽)


  나무 한 그루 우람하게 자라자면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야 합니다. 곧, 아이 하나 태어날 때에 씨앗 한 알 심어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면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얻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 저희 아이를 낳아 다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지나면 훨씬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이때에 다른 나무씨 한 알을 더 심으면 우람한 나무 곁에 차츰 크는 새 나무 한 그루 나란히 섭니다. 살기 좋은 마을이라 여기는 곳에서 살기 좋은 보금자리라 여길 터를 일구면, 나무들은 차츰차츰 뿌리를 키우고 줄기를 굵힙니다. 나무는 백 살이 되고 삼백 살이 됩니다. 오백 살과 천 살을 먹습니다. 이제 천 살이나 이천 살을 먹은 나무가 마을이나 보금자리 둘레에 있으면, 이 나무는 뭇사람한테 좋은 기운을 늘 베풉니다. 싱그러운 풀빛과 상큼한 풀내음을 나누어 주면서 따사로운 삶을 누리는 기쁨을 베풉니다.


  고흥 읍내에 볼일 보러 갈 적에는 팔백예순 살 먹은 느티나무 밑에서 다리를 쉬곤 합니다. 어른 여럿이 팔을 벌려야 안을 만큼 굵직한 느티나무인데,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아합니다. 어른도 이 나무에 올라가서 놀 만합니다. 우람한 나무는 누구한테나 좋은 그늘과 맑은 숨결을 베풉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이 나라 곳곳에 나무가 꽤 있습니다. 그러나 몇 백 해를 아름답게 살아낸 나무는 퍽 드뭅니다. 몇 천 해를 기운차게 살아낸 나무는 아주 드뭅니다. 사람들 스스로 나무를 아끼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 스스로 나무하고 어깨동무하지 않아요. 사람들 스스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나무 한 그루 곱다시 지켜보며 사랑하지 못해요. 다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나무 한 그루 곱다라니 지켜보며 사랑한다면, 어느 고을에 가든 눈과 귀와 코와 살결을 쉴 만할 텐데, 나무 한 그루 아닌 편의점과 가게만 끝없이 늘어납니다. 나무가 설 자리에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가 자꾸 생깁니다. 나무 한 그루 천천히 자라날 빈터는 사라지고, 자가용을 댈 시멘트땅이나 아스팔트땅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 “나 같은 애는 어린 거 빼곤 아무 장점도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너같이 시간 잘 지키고 성격 좋은 애가 어딨다고. 넌 옛날부터 좋은 애였어.” (20쪽)
- “그치만 가슴도 크고 괜찮던데.” “가슴이야 확실히 컸지. 근데 진짜 중요한 건, 날 얼마나 좋아하느냐니까.” (70∼71쪽)


  이와모토 나오 님 만화책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도 한국도 ‘작은 면’에서 어린이와 젊은이가 사라지는 흐름은 엇비슷합니다. 마을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고, 할아버지는 술놀이에 젖어드는 모습이 어슷비슷합니다.


  스스로 생생한 기운을 잊습니다. 스스로 맑은 기운을 잃습니다. 스스로 예쁜 기운하고 등돌립니다. 스스로 푸른 기운하고 멀리합니다.


- “미안해, 오빠. 고마워. 그렇게 동네 심부름 가는 차림으로 달려와 줘서.” (48쪽)


  도시사람은 휴가철을 맞이해 물과 흙과 하늘과 풀이 좋은 시골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도시사람은 휴가철이 아니어도 틈틈이 ‘눈과 귀와 코와 살결이 예쁘게 쉴 만한’ 좋은 시골을 찾아 나들이를 다닙니다. 도시사람은 여느 때에는 언제나 도시에서 먹고 마시고 쓰고 즐기지만, 온통 도시에서만 젖어들지 못합니다. 숨을 돌릴 틈을 마련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공원을 찾고, 도시 곳곳에 나무 몇 그루나 꽃 몇 송이를 심습니다. 아파트 툇마루이든 방 한켠에든 꽃그릇 한둘이라도 놓으려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준다며 꽃다발을 마련하곤 합니다. 시골에는 꽃가게가 없습니다만, 도시에는 꽃가게를 쉬 만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들판과 숲을 바라보며 철과 날씨를 헤아리지만, 도시에서는 사람들 옷차림으로 철과 날씨를 헤아립니다. 시골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을 들추지 않아도 철과 날씨를 깨달으나, 도시사람은 신문이나 방송을 들추지 않고서야 철과 날씨를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 스스로 자연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고을이 바로 자연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며 사람들 스스로 자연이고 사람들 살림집 또한 자연인 줄 모르거나 잊거나 생각조차 못합니다. 이리하여 따로 자연그림책을 그려서 아이들한테 읽히거나 생태환경책을 써서 어른들끼리 읽곤 합니다.

 

 

 


-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을 사람들은 반대할까?” ‘괜찮아, 여름축제도 해냈는데 뭐.’ “축제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야. 마을 전체를 설득해야 해. 그동안 이렇게 대규모의 일을 생각한 적도 없고, 했다가 실패할까 봐 두려워.” ‘하지만 넌 여기 계속 있을 거잖아.’ (175∼176쪽)


  나무는 늘 노래를 합니다. 풀벌레도 노래를 하고 멧새도 노래를 하는데, 자동차도 노래를 하고 공장도 노래를 하겠지요. 저마다 제 삶결에 맞추어 노래를 하겠지요.


  나무는 푸른숨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는 푸른잎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는 푸른빛으로 노래를 합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어 보셔요. 나무가 베푸는 노래를 맞이해 보셔요. 나무가 나누려는 노래를 받아들여 보셔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 짙푸르게 가지를 뻗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해마다 씨앗을 맺어 천천히 숲을 이루고 싶습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는 사람과 벌레와 짐승과 새와 풀 모두하고 사이좋게 이웃이나 동무가 되어 예쁜 숲누리를 보살피고 싶습니다. 나무는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서 온 고을에 맑은 웃음꽃이 피어나도록 이끄는 바람을 불러옵니다. (4345.8.9.나무.ㅎㄲㅅㄱ)

 


―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 (이와모토 나오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0.12.15./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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