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색잉꼬 3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한 사람이 걸어가는 길
 [만화책 즐겨읽기 170] 데즈카 오사무, 《칠색 잉꼬 (3)》

 


  저마다 제 갈 길이 있어 스스로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갑니다. 누군가는 참말 씩씩하게 제 길을 걸어가고, 누군가는 더없이 꿋꿋하게 제 길을 걸어갈 텐데, 누군가는 갈팡질팡하며 제 길 앞에서 해매고, 누군가는 고단하거나 힘겹게 제 길을 걸어갑니다.


  내가 오늘 걷는 이 길은 얼마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가 하고 돌아봅니다. 내가 오늘 걸어 어제가 되고, 내가 오늘 걸을 모레나 글피는 얼마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든, 나무 한 그루로 태어나 살아가든, 풀포기 하나로 태어나 살아가든, 딱정벌레 한 마리로 태어나 살아가든, 저마다 즐겁게 누릴 삶입니다. 씩씩하게 제 갈 길을 걸어갑니다. 예쁘게 제 갈 길을 빛냅니다.


  나비로 태어난 목숨은 나비이기에 아리땁습니다. 소금쟁이로 태어난 목숨은 소금쟁이라서 어여쁩니다. 구름을 이루는 작은 물방울로 태어난 목숨은 작은 물방울인 만큼 아름답습니다. 내 손가락을 이루고 내 머리카락을 이루는 숱한 세포는 이들 세포대로 예뻐요.


- “상대는 어떤 사람이지?” “학자라던데, 어디 외국의 유명한 대학 출신이래.” “부잣집 아들인가?” “그런 건 몰라. 부자건 아니건 이런 사람은 싫어. 난 말이야, 학자라든가 대학 출신 같은 건 정말 싫다고!” (9쪽)
- “여긴 말하자면 자동차의 시체안치소야. 여기에 오면 괜히 눈물이 난다니까. 옛날이 좋았어. 자동차 수도 적어서 소중하게 다뤄졌지. 지금은 너무 간단히 쓰고 버리고 있어. 정말 저들에겐 안 된 일이야.” (110쪽)

 


  저녁에 지는 해를 누리면서 두 아이와 들길을 자전거로 달릴까 하는데, 옆지기가 말립니다. 우리 집 앞 논에 풀약을 뿌리는데, 이렇게 풀약을 뿌릴 때에는 자전거를 달리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대목을 먼저 살피지 못했을까요. 모기약을 뿌릴 때에 모기약이 사람 몸에도 스며들기 마련이라 몹시 나쁜 줄 알면서, 마을 할아버지가 들판에 풀약을 칠 때에는 이 풀약이 바람에 날려 우리 눈과 코와 귀와 입과 살갗으로도 스미는 줄 왜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이들이 많이 졸린 때라 자전거수레에 앉혀 재울 마음으로 자전거를 큰길로만 달리기로 합니다. 들판하고 조금 떨어진 큰길을 달립니다. 그러나, 시골에서 큰길이라 하더라도 왼편과 오른편 모두 논자락입니다. 이웃마을에서는 큰길 옆에 붙은 논에 경운기를 대고 두 할아버지가 줄을 잡고는 한 할아버지가 풀약을 뿌립니다. 자전거를 달리는데 바람으로도 풀약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리나케 다른 이웃마을 쪽으로 접어듭니다. 고즈넉하니 사람이 없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천등산 자락 밑으로 할아버지 한 분이 풀약을 뿌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리 가도 안 되고 저리 가도 안 됩니다. 이쪽에서도 풀약을 뿌리고 저쪽에서도 풀약을 뿌립니다. 도무지 숨이 막혀 안 되겠다고 느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 “헤헤, 형사 나리의 눈에도 눈물이.” “시끄러워. 불쌍하니까 눈물이 나오는 거야. 당연한 거잖아. 넌 감정도 없는 동물이냐?” (20쪽)
- “저기, 저는 그보다 연구실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해요. 곰팡내가 나는 것 같달까.” “이거 꽤 까다로우시군요.” “애당초 학자라는 게 싫어요. 학생 때도 공부만 아는 애들을 종종 두들겨패곤 했으니까.” (35쪽)

 

 

 


  도시에서 살아갈 때에는 지나치게 많은 자동차마다 내뿜는 배기가스가 동네 바람을 더럽힌다고 느꼈습니다. 도시에서는 어느 길을 걸어도 자동차 배기가스 먼지가루를 들이마셔야 합니다. 여기에다가 숱한 공장과 숱한 건물과 숱한 가게와 숱한 아스팔트에 둘러싸여야 합니다.


  시골에서는 어느 마을을 걸어도 으레 풀약을 치는 만큼 한갓지게 들길을 걷거나 멧길을 누리고 싶어도 풀약 내음이 코를 찌르면 집안에서 꼼짝을 할 수 없습니다. 풀약 기운이 좀 수그러든 뒤에는 맑은 바람을 마시면서 상큼하거나 시원하구나 하고 느끼지만, 어쩐지 홀가분하지는 못합니다. 내가 먹고 내 이웃이 먹으며 내 아이들이 먹는데, 왜 흙일꾼 스스로 풀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흙에 뿌리고 풀에 뿌려야 할까 아리송합니다.


  등판에 살짝 돋은 땀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작은아이를 방에 누입니다. 작은아이는 자전거를 조금 달려도 잠듭니다. 큰아이도 잠들 만하나 잠들지 않습니다. 물을 따뜻하게 해서 큰아이를 씻깁니다. 더운 여름날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대여섯 차례 씻습니다.


  다 씻은 아이한테 새 옷을 입히며 헤아립니다. 아마 우리 시골마을에서 마당이나 밭뙈기에 풀약을 안 쓰는 집은 우리 집 하나이지 싶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에서 집 안팎에 모기약을 안 뿌리고 모기향을 안 태우는 집도 우리 집 하나이지 싶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꼭 한 해 동안 모기향을 태운 적 있으나, 모기향을 태우며 ‘모기에 앞서 사람이 먼저 숨이 막혀 죽겠다’고 느꼈습니다. 모기향은 모기도 죽이고 사람도 죽이겠다고 느꼈어요. 게다가 모기는 모기향 내음에 차츰 길드니까 더 센 모기향이 있어야 합니다. 이동안 사람은 더 센 모기향에 찌들어야 해요.


- “형사 나리, 연극이란 건 말이지, 상대에게 살아갈 기력을 주기 위해 있는 거라고.” (44쪽)
- “이제 와서 사과해도 늦었겠지만 말이죠. 그 말을 취소해 주십시오! 내 명예가 걸린 말입니다.” “아니야, 늦진 않았네. 사과하려면 지금도 좋아. 물론 사과는 자네가 해야지.” “왜 내가 사과해야 합니까!” “그런 엉망진창인 연극을 보여줬으니 관객들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란 말이네.” (79∼80쪽)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사람다운 목숨을 빛낼까 궁금합니다. 사람은 어떤 길을 어떤 넋으로 걸어갈 때에 사람다운 사랑을 나눌까 궁금합니다.


  나는 자동차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름만 먹고 배기가스만 내뿜는 자동차는 달갑지 않습니다. 빼어나다는 과학기술과 첨단기술이 있다면서 왜 자동차는 아직까지 기름을 먹으며 배기가스를 내뿜어야 하나요. 지구별 석유가 많이 줄었다면서 왜 여태껏 기름 아닌 햇볕이나 물이나 바람을 먹으며 굴러가는 자동차는 안 만드나요.


  사람들이 즐기는 만화나 영화를 보면, 초능력을 써서 몸을 다른 데로 옮기는 일이 곧잘 나타납니다. 몸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일이란 만화나 영화에서만 나오는 이야기일까요. 여느 사람 누구나 마음속에 깃든 힘을 슬기롭게 갈고닦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뿐히 옮길 수 있지는 않을까요. 영어로 말하자면 텔레포트쯤 될 텐데,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고 슬기롭게 텔레포트를 할 줄 안다면,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우주선도 없어도 되겠지요. 누구나 사랑스럽고 슬기롭게 텔레포트를 할 줄 안다면 전쟁이나 싸움이 터질 까닭이 없고, 돈이나 보배를 몰래 숨길 일도 없을 테며, 권력이나 계급이 생길 수도 없을 뿐더러 총이나 칼 같은 무기란 덧없겠지요. 그야말로 골고루 나누고 골고루 누리며 골고루 빛나는 삶이 되리라 느껴요. 저마다 숲을 아끼고 숲에 깃들며 숲으로 숨을 쉬리라 느껴요.


- “이건 진짜 축하할 일인걸. 나는 꼭 보러 갈 겁니다. 포장마차를 접고서라도. 손님, 코즈키 씨의 시라노 연기, 본 적 없지요? 난 세 번이나 봤다고요.” (89쪽)
- ‘그럼 저 머리의 상처는 연극의 분장이 아니라 진짜 상처란 얘긴가. 저분은 상처의 고통을 참고, 극장으로 달려와서 지금까지 연극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97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 잉꼬》(학산문화사,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셋째 권에 이르니, 만화책 《칠색 잉꼬》에 나오는 ‘칠색 잉꼬’하고 ‘센리 형사’가 시나브로 서로한테 마음이 끌려 사랑이 싹트는 모습이 곧잘 나타납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나 다른 삶길을 걸었으나, 두 사람은 같은 넋을 품으며 같은 꿈을 꾸는구나 싶어요.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형사라 하지만, 도둑이나 형사라는 껍데기를 벗고 맨몸뚱이 ‘사람’이라는 ‘빛’으로 돌아본다면, 칠색 잉꼬와 센리 형사 두 사람은 ‘사랑’으로 ‘지구별’을 예쁘게 어루만지고 싶은 ‘꿈’이 있어요.


- “이번만은 특별히 넘어가 줄 테니까. 그 대신 내 말을 잘 들어야 해. 내 기분이 내킬 때 같이 데이트 해 줄 것!” (173쪽)


  한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빛 한 줄기가 흐르는 길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빛 한 줄기가 온누리에 따스함을 흩뿌리는 길입니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길은 빛 한 줄기가 모든 목숨을 살가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고운 기운으로 내 살붙이를 곱다시 어루만질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샘솟는 착한 기운으로 내 동무를 함초롬히 얼싸안을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마음에서 피어나는 좋은 기운으로 내 이웃을 알뜰히 보살필 한 사람입니다. (4345.8.1.물.ㅎㄲㅅㄱ)

 


― 칠색 잉꼬 3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도영명 옮김,학산문화사,2012.1.2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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