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ane Michals (Paperback)
Renaud Camus / Thames & Hudson / 1990년 8월
평점 :
품절


 

 

 


 좋거나 나쁜 사진은 없다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1]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Duane Michals》(Photo Poche,1983)

 


  사진은 언제나 사진일 뿐, 좋다고 할 사진이나 나쁘다고 할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삶은 늘 삶일 뿐, 좋다고 할 삶이나 나쁘다고 할 삶은 따로 없습니다. 사랑은 노상 사랑일 뿐, 좋다고 할 사랑이나 나쁘다고 할 사랑은 따로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너르며 고운 넋이 되어 아름다운 새누리에서 새 삶을 잇고, 누군가는 스스로 불구덩이 같은 무덤을 파서 고된 죽음을 되풀이합니다.


  아침을 맞이해 해가 뜹니다. 저녁을 맞이해 해가 집니다. 뜨는 해와 지는 해는 그동안 얼마나 기나긴 햇수를 이었을까요. 비가 내리고 구름이 흐르며 바람이 붑니다. 비와 구름과 바람은 얼마나 기나긴 햇수를 이었을까요.


  한결같은 넋은 아름답습니다. 한결같이 흐르는 목숨은 아름답습니다. 한결같지 않은 넋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흐르지 못하는 목숨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숲에서 태어나 숲을 먹고 숲을 마시며 숲을 누리던 사람은, 숲사람으로서 한결같은 넋과 목숨을 건사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숲에서 태어났으나 숲을 밀어 없앤 사람은, 숲이 밀려 없어진 자리에서 태어난 사람은, 숲을 잊거나 잃거나 모르거나 등진 채 살아갑니다. 숲이 사라지거나 숲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살아간다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숲에서 나는 목숨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숲을 밀어 없앤다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숲을 남겨 풀과 나무를 얻어야 합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야 밥을 먹고, 풀과 나무가 있어야 짐승을 길러 고기를 먹습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야 바다가 튼튼하게 살찌면서 바다에서 고기를 얻습니다.

 

 


  숲도 바다도 하늘도 흙도 모두 한결같습니다. 해가 한결같듯 숲이 한결같고, 바람이 한결같듯 바다가 한결같으며, 비와 구름이 한결같듯 하늘과 흙이 한결같습니다.


  사람은 숨을 쉽니다. 사람은 물로 이루어져 물을 마십니다. 사람은 목숨을 먹습니다. 사람은 숱한 목숨한테 둘러싸인 채 제 목숨을 맑게 빛냅니다.


  따사롭게 내리쬐다가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한여름 햇살을 느끼면서 《Duane Michals》(Photo Poche,1983)를 펼칩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Duane Michals》는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 님 사진으로 이루어집니다. 조그마한 사진책을 대청마루에 펼쳐 읽자니, 다섯 살 큰아이가 조르르 달라붙으며 같이 보자고 합니다. 아버지랑 같이 본 다음 제가 따로 더 보겠다고 합니다.


  다섯 살 아이는 《Duane Michals》를 읽습니다. ‘어, 머리가 없네?’ ‘어, 나무가 있네?’ ‘어, 아기가 있네?’ ‘어, 옷을 벗었네?’ ‘어, 길이네.’ ‘어, 물이 흐르네.’ 하고 종알종알 입을 놀립니다. 다섯 살 아이는 사진마다 한 마디씩 토를 달면서 읽습니다(2012년에 다섯 살인 큰아이가 앞으로 열 살이 되거나 스무 살이 될 적에는 이 사진책을 어떻게 새롭게 읽을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아이가 바라보는 사진은 ‘다섯 살 아이가 살아온 결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다섯 살 아이는 ‘듀안 마이클’ 사진을 읽지 않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지구별 사진밭 큰 기둥’으로 기린다 하는 어느 사진쟁이 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그저 사진을 읽습니다. 다섯 살 아이는 그예 사진책을 천천히 읽으며 놉니다.

 

 

 

 


  누군가는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가서 사진학을 배우거나 사진역사를 배우거나 사진기술을 배우면서 ‘듀안 마이클’이라 하는 사진작가 한 사람과 사진작품을 이론으로 익히고 실천으로 따라할 수 있습니다. 듀안 마이클 님이 사진에 담은 넋과 뜻을 새기면서 곰곰이 살피거나 머리에 지식을 담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전시회에 걸린 듀안 마이클 님 작품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녁 이름을 모르는 채 ‘오호, 이러한 사진도 있네.’ 하고 생각하며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사진은 없고, 훌륭하지 않은 사진은 없습니다. 멋있는 사진은 없고 멋있지 않은 사진은 없습니다. 뛰어난 사진과 뛰어나지 않은 사진도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결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무늬를 사진으로 옮깁니다.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기울이는 사랑을 사진으로 적바림합니다.


  내 사진은 내 이야기입니다. 내 이야기를 다루는 내 사진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습니다. 오직 내 이야기일 뿐이요,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빚은 내 꿈과 빛이 담긴 사진 하나일 뿐입니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오직 나입니다. 내 목숨은 더 거룩하지 않지만, 덜 거룩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며 내 눈으로 바라본 모든 삶자락 가운데 한 가지를 사진으로 담기에 더 빛나지 않으나, 덜 빛나지 않습니다. 딱 한 자락을 담는 사진이라 하지만, 딱 한 자락을 담는 사진에 내 온 삶과 이야기와 사랑이 스밉니다. 두 시간짜리 영화를 찍든, 스무 해짜리 영화를 찍든, 아니면 두 장짜리 사진으로 엮든, 이 모든 자리에는 내가 누리는 꿈과 믿음과 생각이 가만히 깃듭니다.


  듀안 마이클 님은 이녁이 생각한 길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듀안 마이클 님은 이녁이 살아가며 사랑하는 꿈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무언가 내세우는 사진이 아니고, 어떠한 주의나 주장을 외치는 사진이 아닙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사진기라는 기계를 빌어 가만히 나타냅니다. 가슴속에서 태어나는 그림자를 사진기라는 기계를 얻어 살며시 드러냅니다.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는 사진이 되든, 두 손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살짝 벌려 실눈을 뜬 사진이 되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척하지만 눈으로는 빤히 바라보는 사진이 되든, 달라질 이야기란 없습니다. 듀안 마이클 님 사진책 《Duane Michals》 한복판을 펼치면, 꽃다발을 든 할머니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습니다. 나도 빙그레 웃고, 우리 집 아이도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책 《Duane Michals》 겉장과 맨 마지막을 바라보면 앤디 워홀이라는 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인데, 나도 때때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리 집 아이도 때때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내가 좋은 삶을 누린다 여기면 내 사진은 늘 좋은 사진이 되고, 내가 좋은 삶을 못 누린다 여기면 내 사진은 늘 좋은 사진이 못 됩니다. (4345.7.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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