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바라는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 읽으라 했기에 읽을 수도 있는데, 누군가 이녁더러 이런 책을 읽으라 말했기에 읽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읽을 만하리라 여기니까 읽지, 억지스레 읽지는 않습니다. 교도소에서 꼭 읽으라며 내민 책이기에 하는 수 없이 읽는다 하더라도, 교도소에서 살아남자는 뜻으로 읽는다면, 이러한 뜻 또한 스스로 바라는 넋입니다.
남이 시켜서 할 수 있는 내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내가 바라서 하는 일입니다. 글쓰기도 글읽기도 스스로 마음으로 우러나와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지 않을 때에는 글 한 줄 못 쓰고 글 한 줄 못 읽습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와 배가 고프다 느끼기에 밥술을 듭니다. 마음으로 우러나오지 않으면 어떠한 밥상 앞에서도 꼼짝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삶을 읽는 사람입니다. 더 좋은 삶을 읽을 수 있으나, 더 나쁜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영부영 삶을 흘리면서 어영부영 아무 책이나 함부로 읽기도 할 테고, 다부지게 삶을 아끼면서 어느 책이든 알차게 받아들이거나 살피기도 합니다. 곧, 스스로 삶을 어떻게 아끼려 하는가에 따라 책읽기가 달라집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는 만큼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살피며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삶을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또한 제대로 안 살피고 제대로 안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책이 될 글을 쓰는 사람은 삶을 쓰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아끼고 좋아하며 빛내고픈 삶을 글로 씁니다. 책쓰기란 언제나 삶쓰기일밖에 없습니다. 아름답다 느낄 만한 삶이든 엉터리로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삶이든, 어떠한 글이든 삶을 담는 글이 됩니다.
책을 읽으며 내 이웃이 어떠한 삶을 어떠한 넋으로 일구는가 하고 들여다봅니다. 글을 쓰며 나 스스로 오늘 하루를 어떠한 꿈으로 누렸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어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나는 사랑을 꿈으로 이루고 싶어 글을 쓰며 책을 읽습니다. 나는 사랑을 맑은 빛으로 보살피고 싶어 글을 쓰는 한편 책을 읽습니다. 좋은 삶을 좋은 넋으로 누리고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좋은 말마디에 실어 글로 빛내고 싶습니다.
이른새벽부터 노래하는 제비들은 여름비 내리는 들판을 마음껏 날아다닙니다. 비오는 날 먹이를 찾느라 훨씬 부산스럽게 다녀야 할 테지요. 나는 이른새벽에 뒷간에서 똥을 누며 제비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뒷간에 앉아 한손에는 책을 들어 펼치면서도 한귀로는 제비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내가 쓰는 글은 아무나 읽을 수 없다고 문득 깨닫습니다. 아니, 내 글은 아무한테나 읽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한테만 내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삶을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돌볼 때에 흐뭇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만 내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고맙게 맞이하면서 즐거이 누리고 예쁘게 마무리하고픈 꿈을 키우는 사람한테만 내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얻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내 글에 지식이나 정보를 담고프지 않습니다. 내 글을 읽을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깜냥과 슬기를 북돋아 이녁 삶을 곱게 살찌울 수 있기를 빕니다. 내 글 담긴 책을 장만하여 읽을 사람들 누구나 이녁 스스로 이녁 보금자리를 곱다시 돌보면서 온 하루 흐드러지게 밝힐 수 있기를 빕니다. 이루고 싶은 꿈을 꾸면서, 나누고 싶은 사랑을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5.6.18.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