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
― 아버지 좀 찍어 주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가 거의 없는 탓에 시골마을 어른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적에 논밭을 뒹굴거나 가로지르며 뛰노는 아이들이 참말 없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어디에서나 거의 혼자 뒹굴거나 뛰어놉니다. 마늘을 캐고 엮어 경운기에 실은 마늘밭은 차츰 넓어지지만, 이 덩그러니 드러난 흙밭을 뒹굴 놀이동무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는 놀이동무가 딱히 없지만, 스스로 놀이동무를 찾습니다. 나무하고 놀고, 풀이랑 놉니다. 고욤나무 밑에서 고욤꽃송이 주워 놉니다. 고추꽃을 바라보고, 돌 틈 마삭줄에 맺힌 하얀 바람개비꽃을 들여다봅니다.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부릅니다. “아버지 일하는 모습 좀 찍어 주어.” 다섯 살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들고 마늘밭 귀퉁이에서 사진 여러 장 찍습니다. 꼭 여섯 장 찍고는 사진기를 내려놓습니다. 잘 찍어 주었나. 잘 찍었겠지, 하고 믿으며 하던 일을 마저 합니다.


  이윽고 이웃집 마늘밭 일손 거들기를 마칩니다.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이는 이내 아버지 손을 놓고 먼저 저 앞으로 힘차게 달음박질을 합니다. 달리고 또 달려도, 뛰고 또 뛰어도 기운이 넘칩니다. 좋구나, 좋은 삶이고 사랑이구나, 하고 느끼며 아이 뒷모습을 기쁘게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이 뒷모습을 참 자주 찍습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한테 뒷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씩씩하게 달리는 뒷모습을 보여주고, 꽃밭이나 풀밭에 옹크리고 앉아 꽃이랑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345.5.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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