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잎
찔레꽃잎은 먹는다. 찔레나뭇잎은 먹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을 나고 새봄을 맞이해 처음으로 돋은 보들보들한 찔레나뭇잎도 먹을 수 있을 테지. 새봄에 막 돋은 느티나뭇잎도 먹을 수 있으니까.
찔레꽃잎을 먹는다. 아이와 함께 천천히 씹어서 먹는다. 꽃잎 하나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으니 찔레꽃잎 내음이 입안으로 확 퍼진다. 자그마한 꽃잎은 꽃잎 맛이 난다. 배고플 때에 잔뜩 따서 먹을 수 있겠다고 느끼는데, 한 움큼이나 두 움큼 따서 먹는다고 얼마나 배고픔이 가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내 몸으로 들어온 찔레꽃잎은 내가 살아가는 흙을 떠올리도록 이끌고, 내가 맞이하는 햇살을 되새기도록 이끌며, 내가 마시는 빗물을 헤아리도록 이끈다.
저녁이 되어 들꽃 하나둘 잎을 오므리는데, 찔레꽃은 잎을 펼친 채 있다. 뉘엿뉘엿 기울어 어두워지는 들판에서 찔레꽃잎 하얀 빛깔은 더 하얗다. 봄을 부른다는 알록달록 어여쁜 꽃들 모두 지고 온 들판과 멧등성이에 푸른 빛깔 짙을 때에, 찔레꽃 작은 송이는 소담스레 저희끼리 옹크리면서 작은 무리를 이룬다. 푸른 들판에서 길을 잃지 말라며 하얗게 빛난다. (4345.5.22.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