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종이문 그림

 


  나무문에 창호종이를 곱게 발랐더니 어느새 아이가 무언가 꼬물꼬물 그림을 그렸다. 문에 그림을 그리지 말아 주렴, 그림종이가 따로 있잖니, 하고 얘기하지만 귓등으로조차 안 듣는다. 그래, 얼마나 그림을 그리려는지 한 번 지켜보자, 하고는 곁에 서서 쳐다본다. 먼저 아이 키높이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윽고 문고리를 잡으며 높은 데까지 손을 뻗어 그림을 그린다. 문짝이 그냥 문짝이 아니요, 문짝에 종이를 바르니, 너로서는 온통 그림판이 되는 셈이니.


  생각해 본다. 벽에 종이를 바르니 벽종이인데, 그림을 그린다는 그림종이도 종이요, 벽종이도 종이인 셈이다. 아이한테는 그림종이 묶은 빈책만 그림 그릴 데가 아니라, 종이를 바른 벽도 문도 그림판이 될 만하다.


  사람은 종이로 묶은 종이책을 읽는다. 사람은 좋은 이웃을 사귀며 사람책을 읽는다. 사람은 너른 들판과 멧자락을 어깨동무하며 풀책과 자연책과 꽃책을 읽는다.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책과 별책과 달책을 읽는다. 사람은 따스한 날씨를 누리며 햇님책을 읽는다.
 

살아가며 모두 책이다. 사랑하며 모두 책이다. 살아가며 모두 그림판이다. 사랑하며 모두 그림판이다. 아이들 웃음은 어버이한테 사랑이요, 어버이 노래는 아이한테 사랑이다. 좋은 하루가 날마다 새롭게 열린다. (4345.5.1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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