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만한 책이 있을까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으레 ‘읽을 만한 책’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 말마디 ‘읽을 만한 책’을 들을 때면 늘 가슴이 답답하다. 온누리에는 ‘읽을 만한’ 책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찍을 만한’ 사진이나 ‘그릴 만한’ 그림이나 ‘부를 만한’ 노래도 없다고 느낀다. 나로서는 ‘읽을’ 책과 ‘찍을’ 사진과 ‘그릴’ 그림과 ‘부를’ 노래가 있다. ‘먹을 만한’ 밥을 먹으면 혀와 목구멍과 배 모두 아프거나 쓰리다. ‘먹을’ 밥을 먹으면 혀도 목구멍도 배도 모두 즐겁다. ‘살 만한’ 집이라면 이럭저럭 두 다리 뻗고 잘 만하다 여길 테지만, 나로서는 ‘살’ 집에서 살아야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모두 즐거우면서 환하게 웃음꽃 피운다고 느낀다.


  내 하루는 아름답다. 내 옆지기 하루는 아름답다. 내 아이들 하루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하루는 ‘지낼 만한’ 하루가 아니라 ‘즐거이 지내며 누리는’ 하루이다. 곧, 우리들은 ‘할 만한’ 일이나 놀이를 하지 않는다. ‘할’ 일과 놀이를 하며 즐기고 누린다.


  더도 덜도 아니라 생각한다. 나한테도 옆지기한테도 아이들한테도, 또 내 좋은 동무와 이웃한테도 ‘읽을 만한 책’이란 썩 도움이 되기 힘들 뿐더러 조금도 사랑이 될 수 없으리라 느낀다. 서로서로 ‘읽을 책’을 기쁘게 손에 쥐고는 ‘누릴 삶’을 예쁘게 건사할 때에 빛나는 하루가 되리라 느낀다.


  그러나 ‘읽어야 하는 책’은 반갑지 않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할 일’을 한다.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니라 ‘먹을 밥’을 먹는다. 읽을 책을 읽을 뿐이다. 사랑해야만 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날이 아니라, 사랑할 사람을 즐거이 사랑하는 나날이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장만하며 책을 읽고 책을 즐기는 내 삶을 톺아본다. 나는 ‘이럭저럭 읽을 만하다 싶은 책’을 읽으며 즐겁던 적이 한 차례조차 없다. 나는 ‘참말 읽을 책’을 읽을 때라야 비로소 즐겁다고 느낀다.


  읽은 책에 별점을 붙이는 일은 부질없겠지만, 별 다섯 만점에 별 다섯을 붙일 만한 책이어야 나한테 ‘읽을 책’이 되겠지. 누군가는 ‘아니 왜 별 다섯짜리 책만 읽나요? 별 하나짜리 책도 읽을 수 있지 않아요?’ 하고 물을는지 모르는데, 나는 ‘내 하루를 늘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삶’으로 누리고 싶다. 나는 내 주머니를 털어 장만하려는 책이 별 다섯짜리 즐겁고 좋은 책이기를 바란다. 나는 내 가슴으로 스며들 이야기 깃든 책이라 한다면 노상 별 다섯짜리 예쁘고 해맑은 책이기를 꿈꾼다.


  읽을 책을 읽는다. 읽을 책을 누린다. 읽을 책을 사랑한다. 읽을 책을 말한다. 읽을 책을 나눈다. 읽을 책을 읽어 느낌글 하나 갈무리한다. (4345.5.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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