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쉰다

 


  좋은 꽃 바라보며 좋은 넋 샘솟는다고 느낍니다. 고운 님 마주보며 고운 꿈 차오른다고 느낍니다. 맑은 해 올려다보며 맑은 삶 따스하구나 싶습니다. 착한 아이 어깨동무하며 착한 마음 다스리겠지요.

  새로 돋는 풀잎 쓰다듬고 새 생각 북돋웁니다. 온 바람 받아먹고 온 믿음 살찌웁니다. 문득 곰곰이 되뇝니다. 내가 자동차 싱싱 달리는 소리 먼발치 또는 가까이 아침부터 밤까지 들어야 하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이 소리들은 내 몸과 마음을 온통 휘젓습니다. 냉장고 웅웅거리는 소리라든지 텔레비전 웅성대는 소리라든지 승강기 오르내리는 소리라든지, 갖은 물질문명 끊임없는 소리들에 둘러싸여야 한다면, 이 소리들은 내 몸뚱이와 마음자락을 파고듭니다.


  시골집에서 섬돌에 아이랑 나란히 앉아 후박나무를 바라봅니다. 들새와 멧새와 제비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습니다. 무논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논밭에서 일하며 주고받는 이야기 아스라하게 듣습니다. 풀잎이 바람에 눕다가 일어섭니다. 나뭇잎이 바람결 따라 파르르 춤춥니다. 햇살은 온 들판에 곱게 내려옵니다. 멧등성이마다 새로 돋은 잎사귀 푸른 빛깔 싱그럽습니다.


  눈이 쉬며 코가 쉽니다. 코가 쉬며 귀가 쉽니다. 귀가 쉬며 손과 입과 몸뚱이가 모두 쉽니다. 마음이 쉽니다. 생각이 쉽니다.

  쉴 수 있기에 책 하나 쥡니다. 쉴 수 있기에 싱긋 웃으며 아이들 껴안고 함께 놉니다. 쉴 수 있기에 옆지기하고 살가이 말을 섞습니다.

  쉴 수 없을 때에 어딘가 막힙니다. 쉴 수 없어 어딘가 막힐 때에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쉴 수 없어 어딘가 막힌 나머지 이맛살을 찌푸리니 자꾸 골을 부리거나 짜증이 피어납니다. 아, 쉬지 못하는 몸이 되어 쉬지 못하는 마음이라면, 이런 몸과 마음으로 읽는 책은 내 삶을 얼마나 살찌우거나 북돋우거나 일으키거나 보듬을 수 있을까요.


  눈을 쉬기에 책을 읽습니다. 눈을 쉬기에 삶을 사랑합니다. 눈을 쉬기에 착하고 맑으며 고운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4345.5.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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