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시집

 


  두 아이와 함께 순천 나들이. 마실거리·먹을거리·아이들 옷가지 담긴 커다란 가방에 얇고 작으며 가벼운 시집 하나 챙긴다. 둘째 아이는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러 사십 분 남짓 면소재지로 걸어가는 동안 내 품에서 잠든다. 첫째 아이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에 닿아 순천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나서 내 무릎에서 잠든다. 첫째를 눕혀 재우고 한참 있다가 시집을 꺼내어 들춘다. 싯말 몇 가락 읊는다. 골이 띵해 더 읽지 못하고 가방에 넣는다. 몇 줄이라도 읽었으니 기쁘다 여기자 생각한다. 돌아보면, 어버이 품과 무릎에서 잠드는 아이들이 온통 싯말이요 이야기책이며 사랑덩어리라 할 만하다. 나는 두 아이 어버이가 되어 이 아이들 작고 따스한 품을 날마다 느낀다. 작고 아리따운 얼굴로 짓는 웃음을 언제나 받아먹는다. 작고 튼튼한 몸뚱이로 짓는 꿈을 한결같이 살피며 내 삶을 이룬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는 둘째가 내 무릎에 누워 달게 잔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는 너무 거칠어 책을 꺼낼 엄두를 못 낸다. 1시간 달릴 길을 자그마치 45분 만에 달린다. 멀미도 나지만, 새근새근 자는 아이가 깰까 싶어 이리 흔들 저리 덜컹 하는 시외버스에서 아이를 다독이느라 진땀을 뺀다.


  좋은 하루가 지나간다. 좋은 하루가 새로 열린다. 좋은 하루를 새삼스레 누린다. 고단한 아이들은 아침 느즈막히 더 눕혀 재운다. 새 하루는 좀 늦게 열고 좀 천천히 맞아들이자. (4345.4.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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