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볼 42 - 무삭제 오리지널판, 완결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다운 마음을 품기
 [만화책 즐겨읽기 138] 토리야마 아키라, 《드래곤볼 (42)》

 


  모든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사람인 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닥 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스스로 사람인 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퍽 많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짐승이라고 합니다. 생각을 하기에 사람이라 할 만하고, 생각을 찬찬히 하면서 이 생각을 하나하나 이루기 때문에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생각은 사람만 하지 않습니다. 나무도 생각하고 여우도 생각합니다. 풀이든 나무이든 짐승이든 벌레이든,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삶을 이룹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길에 걸맞게 삶을 꾸립니다. 사람이 여느 푸나무라든지 짐승이라든지 벌레하고 다르다 한다면, 사람은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게 생각하며 더 사랑스레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요.


- “중요한 것은 기의 강도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거다. 넌 눈으로 쫓기 때문에 내 동작을 따라오지 못하는 거야.” (33쪽)
- “옛날엔 네게 뭔가 지키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지키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정체불명의 힘을 탄생시키고 있다고, 분명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건 나도 지금 상황에선 마찬가지다. 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기 위해, 즐거움을 위해, 적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자존심을 위해 싸워 왔다. 그러나 저 녀석은 달라.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지 않기 위해 한계를 계속 깨면서 싸우는 거야! 그래서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저 녀석은 끝내 날 죽이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내가 아주 약간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듯이.” (112∼113쪽)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생각을 좋은 삶으로 이룹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생각을 나쁜 삶으로 이룹니다. 생각을 슬기롭게 가다듬으면 슬기롭구나 싶은 삶을 이루고, 생각을 바보스레 내팽개치면 참말 바보스럽다 싶은 삶을 이루어요.


  누군가한테는 이웃을 돕느라 백만 원이나 천만 원을 선뜻 쓰는 일이 바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누군가는 이웃을 돕느라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군가한테는 이웃을 돕느라 일억 원이나 십억 원을 쉬 쓰는 일이 즐거울 수 있습니다. 서른 해를 갈무리해서 일억을 모으든, 어찌저찌 금세 십억을 모으든, 이렇게 모은 돈을 아주 홀가분하게 이웃돕기에 씁니다.


  누군가는 바다를 좋아하며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꿈을 꿉니다. 하루아침에 이 꿈을 이룰 수도 있을 테지만, 열 해나 서른 해를 두고 천천히 이 꿈을 이루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소설 하나 아름다이 쓰고프다고 꿈을 꿉니다. 하루아침에 소설 하나 아름다이 써낼 수 있을 테지만, 스무 해나 마흔 해를 두고 찬찬히 이 꿈을 이루기도 해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할 때에는, 이처럼 여러 갈래 온갖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저 사람 생각은 바보스럽거나 어리석다 나무라거나 비웃는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즐거이 여긴다면 내 생각은 조금도 바보스럽지 않고 어리석지 않아요. 나 스스로 내 생각을 예쁘게 보살핀다면 내 생각은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참으로 빛납니다.


- “카, 카카로트, 너, 임마. 왜 트랭크스 애들 놔두고 이런 놈과 강아지 따위를 먼저 구한 거야! … 카카로트, 넌 겨우 저런 띨띨이 대신 모처럼 도움을 준 친구들을 죽게 내버려둔 거야.” (89, 93쪽)
- “앗! 베지터 머리 위의 동그라미도 사라졌네! 다시 살아난 거야! 그러고 보니 넌 아주 극악무도한 녀석은 아닌가 보다!” (164쪽)

 

 


  열예닐곱 푸름이로 보내던 내 지난날을 헤아립니다. 그무렵 나는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참말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머리로만 이야기를 짓고 몸으로는 안 움직인다면 이때에는 생각이 생각 아니라 덧없는 딴소리일 수 있으리라 느꼈어요. 내가 품는 생각이라 한다면 나 스스로 즐거이 몸으로 옮기는 삶이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다섯 학기를 다니는 동안 지옥철을 타며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철이로구나 하고. 지옥철을 아침저녁으로 겪으며, 이 지옥철에 탄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 어떤 마음 어떤 몸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힘겹고 고단하며 짜증을 내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머리로 어떤 이야기를 빚으면, 내 몸은 어느새 나 아닌 다른 사람한테 살며시 깃듭니다. 나는 내 눈이 아닌 다른 사람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이하고 마주하면서 때때로 아이 눈이 되어 어버이인 나를 바라봅니다. 아이 키높이라면 어떻게 비칠까 하고 생각하며 아이 눈으로 마당을 뛰고 아이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몸이 아플 적마다 이렇게 몸이 아프다 한다면, 나보다 훨씬 몸이며 마음이 아프다 하는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내 아픔에 빗대어 다른 이 아픔을 생각한달 수 있으나, 다른 이 아픔을 생각한다기보다 다른 이들 삶과 이야기를 내 삶과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싶은 셈입니다.


  아이를 안을 때에는 ‘안긴 아이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안긴 아이가 느긋해 하도록 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늘 이와 같겠지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밥을 짓는 사람은 밥을 먹을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사랑을 속삭이려 하는 사람은 사랑을 듣는 사람 마음이 되어야 해요. 어른은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과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숨 한 번 들이마시면서 바람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햇살 한 번 올려다보면서 해와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풀잎을 쓰다듬으며 풀잎하고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물을 마시며 물방울과 같은 마음이 되어 봅니다.

 

 


- “아냐! 이건 필요없어. 돌려줄게!” “엑?” “역시 이런 건 우리 취향이 아냐. 성능은 좋지만. 이런 위급한 때에 미안하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싸우고 싶다. 이미 부우도 합체를 풀고 있으니.” (96쪽)
- “사실 지금이니까 고백하는 건데, 뚱보 마인 부우라면 초사이어인3로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되도록 아이들의 힘을 믿고 싶었어. 앞으로의 지구 운명을 위해서도.” (101쪽)
- “가끔은, 지구 놈들 스스로도 책임을 지게 하란 말이다!” (151쪽)


  나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 목숨대로 좋으며 고맙다고 여깁니다. 나 스스로 대단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힘을 내며 살아간다고 여깁니다.


  둘째 아이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함께 해바라기를 하다가 스르르 잠듭니다. 무릎에 누여 조금 토닥이다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힙니다. 첫째 아이는 햇살 고운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놉니다. 혼자 재잘재잘 떠듭니다. 대문 앞 논자락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저기, 개구리 소리.” 하고 나지막히 이야기합니다. 소리를 죽이고 봄개구리 우는 소리를 같이 듣습니다. 아이는 아직 개구리 소리가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제 수많은 개구리가 한꺼번에 깨어나거나 새로 태어나면, 그야말로 온 들판에 왁왁 소리 울려퍼질 테지요. 이런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 아이 스스로 개구리 소리를 익숙하게 맞아들이겠지요.

 


- “자, 덴데! 소원을 말해라. 나메크어는 아직 기억하고 있지?” (157쪽)
- “넌 정말 대단한 놈이야. 그동안 혼자서 수고 많았다. 다음번엔 착하게 환생해라. 그럼 1대1의 승부를 해 주마. 기다리겠다. 나도 더욱 실력을 키우면서.” (197쪽)


  토리야마 아키라 님 만화책 《드래곤볼》(서울문화사,2002) 마흔둘째 권을 읽습니다. 영어 쓰기 좋아하는 일본사람이니 책이름을 ‘드래곤볼’로 붙였는데, 한국말로 옮기자면 ‘미르구슬’ 또는 ‘용구슬’입니다. 만화책 《드래곤볼》은 미르구슬을 찾아나서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권법만화라고도 여길 수 있지만, 줄거리와 사람들 매무새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모험만화도 권법만화도 무협만화도 판타지만화도 우주만화도 격투만화도 …… 아니라고 느낍니다. 《드래곤볼》은 사람으로 태어나 한삶을 누리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느냐를 찬찬히 짚는 만화라고 느껴요.


  곧,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이룹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루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가장 아름답게 가다듬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가장 사랑스럽게 돌봅니다.


  그저 생각만 해서는 이루지 못합니다. 생각이 살찌울 수 있게끔 북돋웁니다. 생각이 꽃피울 수 있도록 보살핍니다. 착한 넋과 고운 몸가짐으로 생각을 일으켜세웁니다. 기쁜 웃음과 맑은 눈빛으로 생각을 갈고닦아요.

 


- “그렇군. 넌 아직 하늘을 나는 방법도 모르는구나. 하긴, 무리도 아니지. 스승도 없을 테고, 그런 걸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 좀 전에 욕해서 미안하다. 용서해라. 네 실력이 어떤지 알고 싶었던 거야.” “엑?” “역시 넌 내 예상대로 정말 대단한 놈이었어. 하지만 파워를 잘 이용 못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싸워 보는 것도 이게 처음이지? 내가 이제부터 네 집에 함께 살면서 가르쳐 주마! 알았지?” “예? 하지만. 우,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안 돼요. 그, 그래서 상금이 필요해 무리해 가며 온 건데.” “괜찮아. 걱정 마! 돈 걱정은 안 해도 돼! 내가 미스터 사탄한테서 받아 줄게. 저 녀석은 영웅이란 핑계로 엄청난 돈을 모으고 있거든.” (240∼241쪽)


  《드래곤볼》 이야기를 이끄는 ‘손오공’은 마흔둘째 권을 마무리하면서 ‘우부’라는 아이한테 이 실마리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우부라는 아이는 아직 맑고 착한 넋이기 때문에 손오공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곧바로 깨닫습니다.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 하늘을 날지 못해요. “생각을 끌어올리도록 돕는 벗이나 스승이 없”으니 제 몸과 마음에 깃든 놀라운 힘을 아직 끄집어내지 못해요.


  사람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이루도록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손오공이 쓰는 가장 빼어나며 멋지고 아름다운 ‘싸움솜씨’는 ‘원기옥’입니다. 모든 사람들 넋을 하나로 모두어 빚는 가장 커다란 꿈이자 생각이라 할 원기옥이에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기 때문에 원기옥을 쓰거나 하늘을 날지 않아요. 손오공은 손오공이기 때문에 ‘에네르기파’를 금세 익히지 않았어요.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았고,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사랑했어요. 착한 넋으로 생각하고 고운 얼로 사랑할 때에 삶이 아름다이 빛납니다. (4345.4.6.쇠.ㅎㄲㅅㄱ)


― 드래곤볼 42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조대웅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02.9.26./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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