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
― 사진과 책
사진으로 엮은 책을 읽습니다. 사진이 아름답기에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나서 고요히 덮습니다. 한동안 다시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시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뭉클합니다. 이윽고 고요히 덮고는 한동안 다시 잊고, 또 나중에 새삼스레 들여다보면서 가슴을 촉촉히 적십니다.
글로 엮은 책에 곁들인 사진을 읽습니다. 글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글하고 동떨어진 채 멋스럽게만 보이는 사진은 밋밋합니다. 사진은 사진일 뿐인데 왜 사진을 사진답게 살리지 못하는가 싶어 슬픕니다. 글은 글일 뿐인데 왜 사진을 덧붙이려 하는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사진에 붙인 말을 읽습니다. 사진을 북돋우는 말 한 마디는 놀랍도록 빛납니다. 사진에 군더더기로 붙인 말은 지겹습니다. 어느 글은 사진 하나를 더 빛내는 사랑이지만, 어느 글은 사진 하나를 치레하는 껍데기로 그칩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사진책은 사진을 이야기하는 글로 엮은 책입니다. 사진책은 사진을 느끼며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맞아들이도록 이끄는 책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 옆에 자질구레하게 덧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오직 그림으로 받아들이는 가슴이 되기를 바라며 말없이 지켜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또한 오직 사진만 덩그러니 보여줄 뿐, 이런 군말 저런 덧말은 바라지 말라고 입을 앙 다문 채 옆에 서서 조용히 바라봅니다.
그림을 구태여 책 하나로 그러모아서 엮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림 한 장이 깊은 책이고 너른 이야기밭입니다. 사진을 굳이 책 하나로 갈무리해서 엮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 한 장에 고즈넉한 책이며 아리따운 이야기밭입니다. 글 한 줄 또한 따로 책 하나로 꾸려 내야 하지 않아요. 글 한 줄이 애틋한 책이요 사랑스러운 이야기밭입니다.
사진을 책으로 묶는 까닭은 사진 한 장만 갈무리하면 ‘이 사진 한 장 태어난 때에 이 사진 한 장을 바라볼 수 있던 사람’ 말고는 더 사진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에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헤아리면서 책으로 묶습니다. 먼 뒷날 새로운 삶을 일굴 아이들한테 ‘사진 하나로 빚은 빛 한 줄기’를 물려주고 싶어서 사진책을 엮습니다.
온통 사진으로 채운 사진책이 싱그럽습니다. 사진 한 장 없이 글로 사진을 이야기하는 사진책이 해맑습니다. 사진이랑 글이 알맞게 얼크러지는 사진책이 향긋합니다. 숱한 사진들로 잘 엮은 사진책 하나는 푸른 넋을 일깨웁니다. 수수한 글발로 잘 묶은 사진책 하나는 고운 빛을 나눠 줍니다. 사진과 글이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사진책 하나는 따스한 사랑으로 스며듭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글책으로 삶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그림책으로 삶이야기 여는 길을 열었습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만화책으로 삶이야기 북돋우는 누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지구별 사람들은 사진책으로 삶이야기 일구는 기쁜 웃음과 눈물을 새로 보듬습니다.
좋은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과 시원한 냇물과 기름진 흙에서 씩씩하고 우람하게 자라난 나무들이 제 온몸을 바쳐 태어난 종이에 사진과 글이 알알이 맺히며 책 하나 새로 선보입니다.
(4345.3.30.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