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을 뜯는 마음


  첫째 아이를 데리고 논둑으로 가서 쑥을 뜯을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첫째 아이가 바지를 몰래 벗고는 치마만 입고 돌아다니기에 이 녀석, 이렇게 치마가 입고 싶은가 싶다가도, 빗줄기 아직 그치지 않아 서늘한 이 날씨에, 이렇게 바지 입으라는 소리 하나 안 듣고 몰래 바지를 벗는 아이를 데리고 쑥을 뜯으러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가자고 생각하는데, 둘째 아이 기저귀를 들여다보니 똥을 누었습니다. 그래, 똥 치우고 가자. 둘째 아이를 안습니다. 기저귀를 벗기고 밑을 씻깁니다. 새 기저귀를 대고 새 바지를 입힙니다. 우산을 들고 논둑에 섭니다. 쑥이 흐드러지던 논둑인데 며칠 사이에 논둑이 휑뎅그렁합니다. 아뿔싸. 논둑을 태우셨구나.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쑥이 무럭무럭 자라날 때까지 지켜보자고 했는데, 그만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잿더미가 된 논둑이지만, 이 잿더미 사이사이 제비꽃 봉우리가 보입니다. 너희는 이 불더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니. 너희는 용케 불더미에서 몸을 비껴 꽃을 피울 수 있는 셈이니.


  둘째 아이를 한손으로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우산을 받습니다. 제비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쑥을 뜯습니다. 거의 모두 잿더미와 함께 사라졌지만, 이곳저곳 쑥은 싱그럽게 잎줄기를 뻗칩니다. 빗소리를 듣고 빗방울을 맞습니다. 빗방울 살포시 안은 쑥줄기를 작은 그릇에 담습니다. 작은 그릇 하나만큼 뜯으면 한 끼니 쑥국 끓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이 뜯어 더 많이 먹을 수 있지만, 꼭 요만큼 한 끼니로 삼자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바지는 안 입고 치마만 입은 첫째 아이가 마루문을 열어 줍니다. 아이야, 너랑 한결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웃음으로 날마다 서로 마주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4345.3.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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