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창고 책읽기

 


  웬만해서는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왼쪽 첫째손가락이 쩍쩍 갈라져 빨래를 할 때마다 너무 따끔거리는데다가 다 마친 빨래를 죽죽 짤 때마다 몹시 쓰라리니 반창고를 붙인다. 아니, 빨래할 때에는 그럭저럭 견디는데, 둘째가 똥을 누었을 때에 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면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야 하니, 이때에는 배기지 못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둘째 밑을 씻길 수 없는 노릇이다. 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약국에 들러 반창고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면내 우체국에 몇 차례 드나들면서 약국 들르는 일은 깜빡깜빡 잊는다.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 잊은 듯한데 무얼 잊었지 하고 내내 생각하지만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가 집에서 둘째 기저귀를 갈며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뜨신 물에 폭 담그며 똥기를 뺄 때마다, 그래 다음에 우체국에 갈 적에는 꼭 반창고를 장만하자고, 하고 다짐한다.


  잠자리에서 첫째손가락 쩍쩍 갈라진 마디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나야 오늘날 이렇게 면내 약국에 들러 반창고라도 사서 붙일 수 있다지만, 먼먼 옛날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는, 또 내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이렇게 죽죽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만날 어머니들은 춥고 시린 겨울날 아기들 똥기저귀를 어떻게 갈고 아기들 밑은 어떻게 씻겼을까. 한겨울에는 모두들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셨을까. 먼먼 옛날 집안 어르신이나 아버지 가운데 아기들 밑을 씻긴 분은 얼마나 있을까. (4345.3.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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