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그림보다는 이야기
한국말로 나오는 일본만화가 한국사람이 스스로 빚는 한국만화보다 훨씬 많지 않으랴 생각한다. 이 많은 만화책이 모두 팔리는가 싶어 궁금하지만, 꽤 잘 팔리니까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한국말로 옮길 수 있겠지. 그런데, 이들 일본만화 가운데에는 그림이 좀 엉성한 작품이 꽤 된다. 만화쟁이라 하면서 어쩜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리느냐 싶은데, 나는 이 그림 엉성한 만화를 읽으면서 그닥 거슬리지 않는다. 꼭 글을 잘 쓴 글책이 더 읽기 좋지 않으며, 사진 잘 찍은 사진책이 더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글책이고 그림책이며 만화책이 된다. 이야기가 없다면 만화책도 노래책도 동화책도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담아야 시집이요, 이야기가 없으면 말짱 글놀이밖에 안 된다.
오늘날 한국만화는 그림을 꽤 잘 그리는 만화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어떤 그림을 왜 잘 그리는 만화인지는 모르겠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느끼기 어렵다. 요즈음 한국만화는 이야기를 살찌우거나 북돋우는 대목이 너무 얕으면서, 그림만 잘 그리려 너무 애쓴다.
참말 그림은 꽤 못 그려도 된다. 주인공 얼굴이 자꾸 바뀌어도 된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없으면 안 된다.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살아숨쉬며, 이야기가 빛날 때에 비로소 만화라 할 만하고, 사진이라 할 만하며, 글이라 할 수 있다. (4345.3.11.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