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넨과 거즈 3
아이자와 하루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만화책 즐겨읽기 121] 아이자와 하루카, 《리넨과 거즈 (3)》

 


 한동안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하다가 금세 맨손 빨래로 돌아갔습니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래를 할 때에는 따순 물이나 차가운 물이나 잘 느끼지 않았습니다. 더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하더라도 꽤 괜찮았고, 오래도록 물을 만져도 손이 덜 아팠습니다. 그런데 고무장갑으로 빨래를 한 지 보름쯤 되었을까, 어느새 고무장갑 한쪽에 구멍이 났어요. 물이 졸졸 새더군요.

 

 새 고무장갑을 살 수 있겠지요. 헌 고무장갑은 버려도 되겠지요. 헌 고무장갑은 잘 잘라서 수도꼭지를 쌀 수 있겠지요. 어쩌면,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는 짐을 나르기 수월할는지 모릅니다.

 

 새삼스레 맨손으로 빨래를 하고 보니 두 손은 더 두꺼워집니다. 더 거칠어집니다. 더 딱딱해집니다. 그래도 나는 이 두 손으로 아이들을 쓰다듬고 아이들을 안습니다. 아이들을 어르고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깁니다.

 

 손끝이 갈라지고 틉니다. 갈라지거나 튼 자리에 물이 닿으면 뜨끔합니다. 쓰라림을 참으며 빨래를 합니다. 한창 빨래를 하노라면 쓰라린 줄 느끼지 못합니다. 다시 쓰라릴 때에는 ‘자, 자, 얼른 나아야지, 얼른 아물어야지. 앞으로 할 빨래가 날마다 가득 있는데.’ 하고 속으로 노래합니다.

 

 


- “이래선 언제까지고 이동 카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장래에 대해 생각은 하는 거야? 일에 대해 좀더 욕심을 부려 보는 게 어때? 생활이 걸린 문제기도 하고 말이야. 아까 그 사람들한테도 그런 말 듣고 분하지도 않아?” “하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사실이니까.” (14∼15쪽)
- “난, 그저 커피 끓이는 게 좋고, 그걸 마시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기뻐. 그래서 가게를 하는 건데, 그게 이상한가?” (39쪽)
- “부모님을 위해 대회에 출전할 생각 없어. 한다면 나 자신을 위해서지.” (54쪽)


 아침에 깔개를 치워 먼지를 떨고 비질을 하고 나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먼지가 쌓입니다. 두 아이가 어수선을 피우는 집안은 늘 어지럽습니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치울 수 있고, 얼마든지 골을 부리며 아이들을 나무랄 수 있습니다. 한편,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치울 수 있습니다. 싱긋 웃으며 아이를 부르고는, 너도 좀 거들렴, 하고 말하며 쓸고 닦을 수 있습니다.

 

 좋아서 아이들하고 살아간다면, 좋아하는 아이들이랑 사랑스러운 나날을 빚을 때에 즐겁습니다. 좋아서 조촐히 식구를 이룬다면, 좋아하는 식구들이랑 아름다울 이야기를 엮을 때에 기쁩니다.

 

 어디 놀이공원에 찾아가야 즐거운 하루이지 않으니까요. 어디 자가용을 몰아 마실을 다녀야 기쁜 나날이지 않으니까요.

 

 자가용 없는 우리 식구는 으레 걷습니다. 자전거를 탑니다. 버스를 얻어 타고 돌아다닙니다. 조용히 돌아보고 가만히 살펴봅니다. 나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물끄러미 하늘과 들판을 바라봅니다.

 

 


- ‘원래는 나도 행복해야 하는데, 빼앗아 버렸다.’ (6쪽)
- “당신은 솔직히 어쩌고 싶은데? 왜 이렇게 사람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당신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원해 본 적 있어? 아무도 좋아했던 적 없는 거 아니야?” (35쪽)


 빨래하기 고단한 날, 언제나 옆지기 말을 떠올립니다. ‘집안일을 좋아해야 해요.’ 하고 읊던 말을 되새깁니다. 참말, 나는 손으로 하는 빨래가 좋으니 손빨래를 합니다. 손으로 아이들을 안고 업기를 좋아합니다. 손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즐겁습니다. 등판에 흐르는 땀을 느끼며 자전거를 몰 때에 기쁩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때에 재미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좋아하는 삶이 됩니다.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을 사귀니까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스스로 아끼는 꿈을 일구니까 빛나는 열매를 맺습니다.

 

 아이자와 하루카 님 만화책 《리넨과 거즈》(학산문화사,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리넨과 거즈》 셋째 권에서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두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기운을 차립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내 가슴에 아로새겨진 생채기를 다스립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아끼면서 슬픔을 달래고 기쁨을 북돋웁니다.

 


- “으윽, 코코미 덕분이야. 코코미 덕분에 이모가 얼마나 위로를 받는지.” (153쪽)
- “잊을 거야. 나도 새로운 사랑을 할 거야.” “뭐, 그것도 나쁘지 않네. 주위에 입후보 하려는 남자들도 많은 것 같던데.” (158쪽)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슬픕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느라 하루 예닐곱 시간이나 아홉열 시간 땀흘려야 하는 사람은 괴롭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노래를 들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밥을 먹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책을 읽으며 좋아하지 않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길을 걷고, 좋아하지 않는 전철을 타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집에서 잠을 자며 쉬어야 한다면, 이러한 나날은 얼마나 고되며 딱할까요.

 

 내 좋은 넋을 씨앗 하나에 담아 밭에 심거나 뿌립니다. 내 좋은 얼을 말 한 마디에 담아 살포기 들려줍니다. 내 좋은 생각을 일으켜 책 한 권 알차게 읽습니다. 내 좋은 마음을 살찌우며 오늘 하루 어여삐 살아갑니다.

 

 어디에서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목숨을 건사합니다. 언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아끼며 숨결을 싱그러이 보살핍니다. 서로서로 좋아할 꿈이어야 합니다. 다 함께 좋아할 누리여야 합니다.

 


-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44쪽)
- ‘웃기도 하고, 우는 일도 없이, 마음속에 파도가 치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 (48쪽)
- ‘마음 깊은 곳에 늘 박혀 있는, 작고 차가운 얼음 같은 덩어리를, 어서 녹여 버리고 싶다.’ (160쪽)


 생각해 보면, 책 한 권 읽는 내 몸가짐은, 책 한 권에 깃든 좋은 열매를 받아먹으면서 내 나름대로 내 슬기를 가다듬고 내 생각밭을 다스리고 싶은 뜻입니다. 누가 거저로 준대서 읽을 책은 없습니다. 싼값에 사들여 읽을 만한 책은 없습니다. 널리 알려지거나 이름난 책이라서 읽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사라느니 상식이라느니 하는 이름이 붙기에 읽어야 하지 않아요.

 

 오직 내 꿈을 빛내는 책이라고 느낄 때에 읽습니다. 오로지 내 사랑을 밝히는 책이라고 여길 때에 읽어요.

 

 이제 슬슬 기저귀 빨래를 할 때입니다. 따순 봄햇살이 마당을 드리우는 날입니다. 먼저 깔개를 빨래줄에 내다 넙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면, 깔개를 걷고 기저귀를 널어야지요. 봄햇살과 봄바람에 기저귀가 마르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식구들 다 함께 봄들판을 거닐고 싶습니다. (4345.3.1.나무.ㅎㄲㅅㄱ)


― 리넨과 거즈 3 (아이자와 하루카 글·그림,최윤정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2.2.2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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