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20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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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슴속 아름다운 별빛
 [만화책 즐겨읽기 120] 이시키 마코토, 《피아노의 숲 (20)》

 


 밤하늘 별빛이 밝습니다. 다만, 밤이 되어 온누리가 조용히 어두운 데에서만 밤별이 빛납니다. 밤이 되었어도 밤 같지 않게 훤한 전깃불빛이 번쩍거린다면 밤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훤한 전깃불빛이 없더라도 찻길에 자동차들 줄줄이 늘어선다면 밤별은 깃들 자리가 없습니다.

 

 낮에는 땅에서 아이들 눈빛이 밝습니다. 아이들 눈은 맑은 꿈과 밝은 사랑을 두루 나누면서 빛납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어린 나날부터 고운 넋을 고스란히 건사한다면 아이들하고 나란히 빛나는 눈길로 온누리를 바라봅니다.

 

 온누리 어느 곳에나 빛이 있습니다.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습니다. 바다에도 있고 멧자락에도 있습니다. 빛은 아이와 어른을 골고루 살립니다. 빛은 풀과 나무와 꽃을 살립니다. 빛은 바람을 타고 마을을 두루 흐릅니다. 빛은 물결을 따라 골골샅샅 누빕니다. 빛은 고운 목숨이 되어 내 몸으로 스며듭니다. 빛은 예쁜 꿈이 되어 내 마음에서 새로 태어납니다.


- ‘자신의 피아노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화가 됐어. 그때 평소처럼 노미스로 쳤다면 탈락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거다. 아마도.’ (10∼11쪽)
- “그런, 네가 사과할 필요 없어. 난 승부에 진 거니까. 비웃는다고 해서 딱히.” “승부란 생각 안 해.” “응, 카이는 그렇겠지.” (25쪽)

 


 날마다 먹는 밥은 쌀알입니다. 쌀알은 겨를 벗긴 볍씨입니다. 볍씨는 벼가 맺은 열매입니다. 벼는 수백 볍씨를 맺으며 제 씨앗을 퍼뜨리려 합니다. 다른 풀도 벼처럼 수백 씨앗을 맺어요. 사람은 이 가운데 벼나 밀을 즐겨먹으며 목숨을 이어요. 곰곰이 살피면 ‘풀씨’를 먹으며 살아간다 할 텐데, 겨를 벗긴 볍씨 가운데 노란 씨눈까지 깎아내어 먹는다면 막상 목숨을 먹는다 하기 어려워요. 밥을 먹을 때에는 노란 씨눈이 싱그러이 살아숨쉬는 쌀을 먹어야 해요.

 

 시금치나 배추를 먹을 때에는 잎사귀를 먹습니다. 무나 당근을 먹을 때에는 뿌리를 먹습니다. 감자랑 고구마는 밭흙을 캐내어 먹습니다. 나무에 달린 능금이랑 배랑 복숭아랑 포도를 따서 먹습니다. 풀을 먹느냐 고기를 먹느냐는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 제 먹을거리를 찾습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쉽게 얻는 먹을거리로 목숨을 지킵니다. 들판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들판에서 쉽게 얻는 먹을거리로 목숨을 지켜요.

 

 그러면, 도시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은 무슨 먹을거리를 쉽게 얻나요? 과자? 케익? 햄버거? 피자? 라면? 세겹살? 돼지고기튀김? 닭튀김?

 

 아이들은 저마다 쉽게 얻는 먹을거리에 따라 숨결을 얻습니다. 바닷것을 얻어 목숨을 지키면 바다에서 살아숨쉬는 넋을 받아들이며 목숨을 북돋웁니다. 들것을 얻어 목숨을 지키면 들에서 살아숨쉬는 얼을 맞아들이며 목숨을 살찌워요. 그렇다면, 도시에서 살아가며 가게에서 과자랑 가공식품을 사다 먹는 아이들은 어떤 것에서 어떤 넋이나 얼을 받아먹는가요. 어떤 꿈을 키우고 어떤 사랑을 돌보는가요.

 


- “2차 때의 연주. 슈우헤이의 새로운 피아노였지. 최고로 멋진 연주였어.” “패배한 날 위로해 주는 거야? 동정받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아니야! 위로 같은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라고!” (27∼28쪽)
- ‘우리에겐 평생을 걸고 자신의 음악을 추구할 수 있다는 행복이 있는데도, 물론 평생을 추구해도 음악이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건, 짧은 인간의 생애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거둘 수 없는 성과겠지만.’ (87쪽)
- ‘아지노 선생님과 카이를 연결한 건 나였다고 분해 했지만, 그건 잘못된 거였어. 아지노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카이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거야. 카이가 무대에 서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까지 쫓아올 수도 없었을 테고, 이렇게 성장할 수도 없었을 거야.’ (120쪽)


 이시키 마코토 님 만화책 《피아노의 숲》 스무 권째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피아노의 숲》에 나오는 ‘카이’는 숲 아이입니다. 카이는 ‘숲 아이’답게 숲에서 자라난 넋을 피아노 가락으로 옮깁니다. 숲에서 스스로 사랑하고 믿으며 꿈꾸던 나날을 고스란히 들려주어요. 사람들이 카이 피아노 선율에 가슴이 저릿저릿 울린다면, 사람들은 ‘숲을 잃거나 잊은 꿈과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숲에서 받아들이던 푸른 넋을 도시에서 지내며 오래도록 잊거나 뒤로 젖히느라 정작 사람들 가슴에 촉촉히 젖어들어야 하던 푸른 이야기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아노의 숲》 스무 권째에서 카이는 동무 슈우헤이한테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얘기해요. “2차 때의 연주. 슈우헤이의 새로운 피아노였지. 최고로 멋진 연주였어.” 하고요. 슈우헤이는 이제껏 ‘피아노 교본’에 실린 대로만 피아노를 두들겼어요. 울타리에 갇힌 슈우헤이였고, 틀에 사로잡힌 슈우헤이였어요. 그런데 이제 슈우헤이는 이녁 나름대로 사랑하면서 이녁 스스로 꿈꾸던 노래가락을 비로소 조금 선보여요. 카이는 이 노랫가락을 놓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 노랫가락을 즐겼어요. 슈우헤이도 피아노를 치면서 이 가락에 깊이 젖어들었어요(19권에서).

 

 다만, 슈우헤이가 되든 카이가 되든 심사위원이 되든 관객이 되든, 이 새로우며 좋은 노랫가락이 다음 경선까지 올라갈 만한 노랫가락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이렇게 피아노를 치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온통 틀에 사로잡힌 피아노에 물들었거든요.

 


- “나는 소우스케의 방임주의엔 찬성이지만, 돌이키기 늦어질까 두려워.” “방임은 아닌데요. 지켜보는 겁니다. 잘 보고 있으면 알 수 있으니까.” “정말인가? 카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 “하하, 거기까지는 무리겠지만, 도움이 필요한 때인지는 거의 알죠.” (67쪽)
- “네 아버지가 아파트 입구를 점거하고 있어. 빨리 전화해서 어떻게든 해 봐. 너, 어른스럽게 결과를 받아들여. 시위하듯이 행방을 감추다니. 그렇게도 부모에게서 걱정받고 싶어? 난 너 같은 응석받이 울보가 너무 싫어.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108∼109쪽)


 쇼팽이든 슈베르트이든 베토벤이든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을 대단히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신 노래를 좋아하며 즐긴 사람들일 뿐입니다. 스스로 제 노래결을 생각하고 제 노래꿈을 빚으며 제 노래사랑을 펼친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 노래결을 생각할 때에 아름다운 노래가 태어나요. 제 노래꿈을 빚을 때에 나부터 둘레 사람 누구나 기쁘게 들을 노래가 샘솟아요. 제 노래사랑을 펼칠 때에 내 삶이 아름다이 빛나면서 참다이 뿌리내립니다.

 

 카이한테는 숲 피아노입니다. 슈우헤이한테는 도시 피아노일 테지요.

 

 숲 피아노라서 더 뛰어날 수 없습니다. 도시 피아노라서 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건 저마다 사랑하며 꿈꾸는 빛을 누릴 수 있으면 됩니다. 어느 때이건 스스로 아끼며 보살피는 빛을 나눌 수 있으면 돼요.


- “슈, 슈우헤이는 남의 재능은 알아차리면서, 왜 자신의 재능은 모르는 걸까. 왠지 화가 나.” (36∼37쪽)
- “나는 언제나 벼랑 끝에 서 있던 것뿐이야.” (113쪽)
- ‘이 곡은 내게 잘 어울리는 작품이야! 나는, 어떻게든 이 곡을 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올라온걸! …… 첫 주자로 치는 건 운이 없는 거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 나는 이 곡을 누구보다도 빨리 치고 싶었어!’ (210, 212쪽)

 


 콩쿨 때문에 피아노를 친다면 덧없습니다. 대회 때문에 피아노를 연습한다면 슬픕니다. 연주회 때문에 피아노를 갈고닦는다면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지만, 내가 피아노를 칠 때에는 ‘남들이 들으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남들이 들어 주면 고맙습니다. 남들이 사랑해 주면 기쁩니다. 그러나, 남들이 들어 주거나 사랑해 주기 앞서, 내가 치면서 내가 듣는 피아노예요. 내가 사랑하면서 내가 즐기는 피아노예요.

 

 내가 쓴 글은 남한테 읽히려는 글에 앞서 나 스스로 되읽는 글입니다. 내가 쓰는 글은 남한테 보여주려는 글이 아니라 내 삶을 아름다이 빛내고픈 꿈을 싣는 글입니다.

 

 카이는 숲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좋은 어머니와 좋은 이웃을 사귀었고 좋은 자연을 누렸습니다. 슈우헤이한테는 좋은 터전이나 이웃이 많지 않았다 할 테지만, 카이라고 하는 좋은 동무가 있어요. 팡 웨이한테든 소피한테든 다들 매한가지입니다. 좋은 터전 좋은 이웃 좋은 살붙이 좋은 동무한테서 사랑을 받은 꿈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피아노 가락으로 옮깁니다. 삶이 피아노가 되고, 피아노가 삶이 됩니다. (4345.2.23.나무.ㅎㄲㅅㄱ)


― 피아노의 숲 20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손희정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2.2.10./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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