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라면 2
켄지 소니시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대수롭지 않아 즐거운 오늘
 [만화책 즐겨읽기 108] 소니시 켄지, 《고양이 라면 (2)》

 


 함께 살아가는 사람 뒤치닥거리를 너끈히 해내는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알바 고양이 유키뽕》이라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몇 권까지 나왔는지 모르나, 한국에서는 12권까지 나왔습니다. 고양이를 귀엽거나 예쁘장하게 그리려 하는 만화는 몹시 많은데, 이렇게 ‘일하는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는 퍽 드물지 않느냐 싶습니다. 귀염둥이 고양이가 아닌 참말 ‘땀흘려 일하는’ 고양이를 다룬 만화는 거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바 고양이 유키뽕》은 재미나게 들여다볼 만한 이야깃감과 삶을 더 살리지 못하고 좀 늘어졌어요. 뒷권으로 갈수록 ‘땀흘려 일하는’ 모습이 자꾸 줄어들면서, 말놀이 같은 모습이 너무 자주 드러납니다. 너덧 권까지는 즐거이 읽다가 그만 시들시들하구나 싶어 책을 내려놓았어요.

 

 라면집을 꾸리는 고양이가 나오는 《고양이 라면》(학산문화사) 1권(2009)을 읽고 2권(2010)째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도 뒷권으로 가며 어영부영 말놀이나 꿰어맞추기로 나아간다면 어떡하지?


- “이 앤 말이지. 너랑 똑같은, 아메리칸 숏헤어란다!” “주인장, 아메리칸 숏헤어였어?” “뭔 상관이야!” “난 혈통서나 종류 따윈 안 따져!” “그럼 이 앤?” “개잖아!” (9쪽)
- “하아. 쟤는 유서 깊은 혈통서까지 달렸는데, 라면장사 같은 거나 하구. 최소한 가정이라도 꾸려 준다면, 발리 손주 얼굴 보고 싶은데. 얘들, 꽤 괜찮지 않아?” “그, 그렇네요.” “어머! 그럼 자넨 어때?” “네? 저요? 됐습니다!” (9쪽)


 소니시 켄지 님이 빚는 만화책 《고양이 라면》은 네 칸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짤막짤막하게 이야기를 꾸립니다. 터무니없다 싶은 이야기가 나오고, 뜬구름 잡는구나 싶은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나, 만화책 《고양이 라면》은 만화 얼거리부터 터무니없을밖에 없어요. 고양이가 ‘알바를 하는’ 틀을 훌쩍 넘어, 고양이가 라면집을 차려 손님을 받는다는 틀이니까요.

 

 라면집 고양이는 라면집에 앞서 초밥을 빚으려 했답니다. 어쩌면, ‘고양이 라면’이 아닌 ‘고양이 초밥’이 나왔을는지 모릅니다. ‘고양이 초밥’은 《고양이 라면》에서 살짝 비추기도 하는데, 밥알에 털이 수북하게 붙을 뿐 아니라, ‘고양이는 초밥 밑감을 날름날름 먹을 수밖에 없다’는 줄거리를 보여줘요. 라면집에서는 라면을 날름날름 먹을 일이 없을 테니까, 그리 걱정없이 일할 만하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리 보거나 저리 보거나 뚱딴지 같은 이야기입니다. 참말 무슨 고양이 라면집이람, 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 누리를 돌아보면, ‘고양이 라면집’보다 터무니없는 일이 참 많아요. 한국땅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국가보안법이야말로 터무니없습니다. 세금으로 때려짓는 무시무시한 4대강 삽질도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끝없이 새로 뚫는 고속도로 또한 터무니없습니다. 오직 반듯하게 펴서 더 빨리 달리도록 한다는 고속도로는 멧자락에 수없이 구멍을 내고 냇물에 수없이 다리를 놓습니다. 구멍은 더할 나위 없이 깁니다. 다리는 그지없이 높고 깁니다.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란 얼마나 뜬구름 잡는 일이라 할까요. 초등학교에 아직 들지 않은 아이한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란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라 할까요. 끔찍한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뿌려 푸성귀와 곡식을 거두는 한국은 얼마나 제 넋이 박혔다 할까요. 소나 돼지나 닭이나 모두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에 찌든 채 고기로 바뀌는 한국은 얼마나 제 삶이 흐른다 할 만할까요.

 

 바보짓이 넘치는 이 나라입니다. 바보스러운 일이 그치지 않는 이 나라예요. 고양이가 초밥을 빚거나 라면을 끓인다 해서 그리 놀랍다 할 수 없어요. 고양이가 차린 라면집은 아무렇지 않다 할 만해요.


- “라면 점이라고, 알아?” “네? 한 번도 못 들어 봤는데요.” “내가 얼마 전에 고안해 낸 건데.” ‘그럼 절대 모르지.’ “자네가 좋아하는 라면 맛은?” “되, 된장라면.” “된장라면이라. 오옷! 오늘은 운수대통인데! ‘큰 맘 먹고 고백’이래!” (14쪽)


 스스로 좋은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오늘날 사회요 문화요 교육이며 예술이고 문화나 과학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꾸지 못하는 오늘날 사회요 문화요 교육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슬프거나 안타깝다 싶은 굴레로 치닫는 오늘날 예술이고 문화나 과학이라고 느낍니다.

 

 제 길을 찾지 못해요. 제 넋을 살피지 못해요. 제 뜻을 돌보지 못해요.

 

 아이들은 왜 시험공부를 하며 푸른 나날을 보내야 하나요. 아이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무얼 배우고 무얼 가슴속에 품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회사원이 되는 지식을 익혀야 하나요. 아이들은 어떤 사랑을 일구는 혼인을 해야 즐거운가요.

 

 회사원이 되어 회사 둘레 온갖 밥집에서 맛나다는 밥을 사먹을 수 있으면 기쁜 나날이 되나요. 회사원이 되어 연봉 많이 번 다음, 한 해에 한두 차례 나라밖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으면 좋은 삶이 되나요. 값비싼 자가용을 몰거나 값진 아파트를 마련하면 보람찬 빛이 드리울까요.


- “양파는 조청색이 될 때까지 볶으라고 했지?” “아마, 그렇죠?” “조청색이면 어떤 조청이지?” “네? 제가 어떻게 알아요.” “오오! 으다다다!” “너무 많이 볶는 거 아녜요?” “오오! 검정 조청이다!” “이젠 틀렸다고 봐요.” (112쪽)
- “자네 그거 알아? 일본인은 1년 동안 80끼니나 카레를 먹는대!” “그, 그래요? 그럼 4∼5일에 1번 꼴이네요. 그럼 진짜 많은 건데!” “너무 많아!” (짜안. 카레 실패했음.) “그러니까, 오늘은 카레 생략!” “에엥?” (112쪽)


 아무것 아니라 할 만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만화책 《고양이 라면》을 읽습니다. 아이들이랑 복닥이면서 방바닥에 드러누워 읽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자리 옆에 나란히 누워 조금 더 책장을 펼치다가 함께 잠이 듭니다. 놀랍도록 맛난 라면을 끓이지는 못하는 고양이라지만, 날마다 새로운 라면을 끓이려고 여러모로 애씁니다. 한 가지 맛을 씩씩하게 지킬 줄 모른다지만,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꿈꾸며 새롭게 사랑합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랑 아이들은 날마다 어떤 밥을 먹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살붙이는 날마다 어떤 밥으로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우는가 돌이켜 봅니다.

 

 좋은 사랑은 어디에서 샘솟는지 헤아려 봅니다. 기쁜 이야기는 어떻게 나누는가 하고 되뇌어 봅니다. (4345.2.5.해.ㅎㄲㅅㄱ)


― 고양이 라면 2 (소니시 켄지 글·그림,오경화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0.1.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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