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해 앞서 장만한 책을

 


 네 해 앞서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장만한 책을 새로 꺼내어 읽는다. 네 해 앞서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이 책을 만났을 때에 ‘예전에 사서 읽지 않았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집어들었다. 예전에는 예전대로 읽었을 테고, 예전에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떠올리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안 읽은 책으로 여길 만하니, 새로 읽어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한편, 예전에 읽었으면서 생각해 내지 못하는 책이라 한다면, 다시 장만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몇 해 지나면 또 잊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네 해 앞서, 우리 집 첫째 아이는 갓난쟁이였다. 갓난쟁이를 옆지기랑 갈마들어 안고 업고 하면서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누볐다. 해마다 구월 끝무렵이면 헌책방골목책잔치를 벌이니, 이 책잔치에 마실을 안 갈 수 없다.

 

 1977년에 처음 나온 책을 2008년에 새로 읽었다. 2008년에 새로 읽은 책을 2012년에 새삼스레 읽는다. 나는 앞으로 2020년에 이 책을 살그머니 떠올려 또 한 번 읽을 수 있을까. 2020년이면 첫째 아이가 열세 살이 될 텐데, 열세 살이 된 첫째 아이는 스스로 이 책을 읽으려 할까. 2030년에 첫째 아이가 스물세 살이 된다면, 그무렵에는 첫째 아이가 기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오늘 내가 기쁘게 읽은 책을 먼 뒷날 아이가 기쁘게 읽으리라. 오늘 내가 그닥 반가이 여기지 않고 그저 사 놓기만 한 책을 먼 뒷날 아이가 고맙게 읽으리라. 오늘 내가 눈물겨이 읽던 책을 먼 뒷날 아이가 이게 뭐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하리라.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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