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시스터즈 6
쿠마쿠라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또 보고 싶어요
 [만화책 즐겨읽기 110] 쿠마쿠라 다카토시, 《샤먼 시스터즈 (6)》

 


 내가 이제껏 즐긴 만화책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릴 적에는 만화책이라 하면 그저 다 좋았습니다. 순정만화이든 명랑만화이든 딱히 가릴 까닭이 없었습니다. 어린 나날 만화책 가짓수가 얼마 없었으니까요.

 

 내 어린 날 일본만화 번역은 몇 가지 안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일본만화를 훔쳐서 이름만 바꾼 만화가 적잖이 있기도 했으나, 어린 나날 즐긴 만화책은 으레 한국만화였습니다.

 

 중학생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드래곤볼〉이나 〈북두의 권〉이나 〈슬램덩크〉가 해적판으로 나옵니다. 이제 와 돌이키면, 국민학생 때에는 〈도라에몽〉이 〈동짜몽〉이라든지 다른 이름으로 바뀐 채 해적판으로 나왔고, 〈권법소년〉과 〈용소야〉 또한 해적판으로 나왔어요. 〈바벨2세〉와 〈캔디〉도 조그마한 해적판으로 나왔는데, 출판사를 알 수 없는 데에서 나와 문방구에서 파는 만화책이 쏠쏠히 있었습니다.

 

 이제 일본만화는 해적판으로 나오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 일본만화는 어엿하게(?) 정식번역판으로 나옵니다. 정식번역판이 나오면서 한국만화 볼 일이 무척 줄어듭니다. 굳이 일본만화를 훔치거나 베끼거나 흉내내는 한국만화를 볼 까닭이 없기도 하고, 그림결이나 짜임새나 줄거리나 고갱이가 얕은 한국만화를 돈 주고 장만할 뜻이 사라지기까지 합니다.

 

 일본에서 만화를 그리는 모든 사람이 ‘전담 편집자’가 따로 있다든지, 도움이가 따로 있다든지, 심부름꾼이 따로 있다든지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전담 편집자랑 도움이랑 심부름꾼을 거느리는 만화가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느끼기로는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그림결부터 많이 엉성할 뿐 아니라, 만화를 이루는 짜임새가 허술하고, 줄거리가 홀쭉하며, 고갱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화는 웃기는 그림과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만화 또한 사람들한테 웃음꽃을 베풀 수 있으나, 그저 웃기려고만 한대서 만화가 되지 않아요.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게 풀어낼 수 있고, 가벼운 이야기도 무겁게 돌아보도록 이끌면서, 언제나 내 삶을 사랑스레 아끼는 맑고 푸른 넋을 보여주는 데에 만화가 뽐내는 기운이랑 빛줄기가 있구나 싶어요.


- “앞으로 너희들도 바깥세상에 나가야 하니까, 조금씩 현실적인 일을 생각해야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응.” … “할아버지는 제가 센신(기숙사 고등학교)에 가는 게 좋겠어요?” “글쎄다. 하지만 치토세(네 어머니)의 생각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언제까지나 같은 생활이 계속되지는 않으니까. 넌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으냐?” (11∼13쪽)
- “멀리 떨어지는 건 쓸쓸해.” “그럼 이치 고(등학교)에 가면 되잖아. 엄마가 뭐라든 관계없어. 같이 있자. 언니!” (26쪽)


 혼자 살아가며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가 고른 만화책은 나 혼자 두고두고 건사할 만화책입니다. 옆지기와 만나 살아가며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살피는 만화책은 둘이 함께 볼 만한 만화책입니다. 아이들 낳아 살아가며 만화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사들이는 만화책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읽을 만한 만화책입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동시책과 동화책만 사 주는 어버이가 좀 괜찮다 싶은 어버이라 했습니다. 얼마 앞서부터는, 아마 열 몇 해 앞서부터는 한국 창작그림책이 곧잘 태어났기에, 이제 아이들한테 그림책 사 주는 어버이가 썩 괜찮다 싶은 어버이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동시책과 동화책과 그림책을 사 주던 어버이들이 그만 ‘영어책’ 사서 읽히는 슬픈 굴레에 빠집니다.

 

 아이들 스스로 영어를 돌아보면서 더 너른 누리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영어책이 아니라, 오직 더 일찍 영어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이른바 ‘조기교육 학습 도구’가 되는 영어책이기만 해요.

 

 아이들한테 굳이 책을 읽히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 좋은 삶을 바라보면서 무럭무럭 자라면 됩니다. 아이 어버이로서 당신 좋은 삶을 일구는 길동무 가운데 책을 정갈하게 사랑한다면, 아이들 또한 저희 좋은 삶을 돌보면서 책 또한 좋은 길벗으로 삼아요.

 

 동시책과 동화책과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누구나 읽는 책입니다. 나이 어린 아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푸름이도 읽고, 젊은이도 읽으며, 늙은 할매 할배도 함께 읽는 책이에요. 가만히 살피면, 오늘날 문학책이라 하는 책은 ‘읽히는 나이 테두리’가 너무 좁아요. 게다가 ‘읽히는 학력 울타리’ 또한 너무 높아요.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이나 미당문학상을 받는다는 작품을 푸름이나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선뜻 선물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머니한테 읽으라 내밀 만한지 궁금해요. 지하철 공사를 하는 일꾼이나 삽차와 짐차를 끄는 일꾼한테 이러한 문학책을 선물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 “3학년은 좋다 이거야. 엄격하지만 막무가내는 아니야. 2학년들이 너무 심해. 게으름 필 구실로 1학년을 가르치면서 당치 않은 연습만 시키고, 3학년이 못 보는 곳에서 때리고, 기술 시험 상대로 쓰지, 잔심부름 시키지, 아 진짜 열받아.” “그런 사람은 많든 적든 어디에나 있지. 정말 싫어졌음 그만두는 게 어때?” (60쪽)
- “뭔가 사악한 것의 눈에 들었어. 그 녀석은 네가 밉다고 생각한 자에게 나쁜 짓을 한다.” “어떻게 안 돼요? 이대로는.” “쫓을 수는 있지만, 너 하기 나름이다. 진심으로 어떻게든 하고 싶으냐? 지금 상태라면 쫓아낸 시점에서 바로 또 다른 것에 홀릴 게다.” (70쪽)


 책 하나에서 아름다운 꿈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동시책과 동화책과 그림책을 비롯해서 만화책과 사진책과 노래책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만화책은 아이들한테뿐 아니라 어른들한테 좋은 마음밥이 됩니다. 사진책은 어른들한테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좋은 생각밥이 됩니다.

 

 삶을 느끼고 사랑을 헤아리며 꿈을 돌아보도록 돕는 이슬떨이 노릇을 하는 책이어야 합니다. 문학이어야 하거나 소설이어야 하거나 인문학이어야 하거나 사회과학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름다운 책’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이 일구는 땀방울이 스미는 책이어야 합니다. 아름다이 살아가는 넋을 실은 책이어야 합니다.

 

 지식을 쌓는 책이 아니기에, 지식을 얻는 만화가 아닙니다. 정보를 나누는 책이 아닌 만큼, 정보를 살피는 만화가 아닙니다. 재미나게 읽는 책이 아닌 터라, 재미나게 읽을 만화가 아니에요.

 

 재미이든 즐거움이든 바로 내 삶에서 비롯합니다. 내 삶이 재미날 때에는 만화를 읽든 시를 읽든 인문책을 읽든 재미납니다. 내 삶이 즐거울 때에는 그림책을 읽든 사진책을 읽든 수필책을 읽든 즐거움이 피어납니다.


- “난 어렸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불리던 시기가 있었어. 조마경. 마물과 본성을 비춘다는 거울. 그게 우리들의 눈이야. 많은 어른들이 어린 나에게 온갖 물건을 보였지. 난 수상한 도구로서 찬양받고, 경멸당하고, 버림받았어.” “…….” “넌 왜 여기 왔어?” “아, 저기, 엄마의 권유로.” “그래. 너도 부모에게서 버림받았구나. 그래서 여기에 버려졌구나.” “아냐! 그런.” “그럼 여기 오기 전엔 어땠어?” “이, 일 때문에 부모님과는 떨어져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여동생과.” “여동생도 비슷한 뭔가가?” “웅.” “역시. 귀찮은 아이를 할아버지한테 억지로 맡겼구나.” “네가 뭘 아니?” “알아. 난 잘 알아. 너의 거울인걸.” “넌 괴로워하며 지내 왔구나. 구름이 꼈어.” “너한테도 꼈어.” (115∼117쪽)
- “게다가 난 네가 아니야! 옛날에 조마경에 대한 얘기를 할아버지께 들었어. 마물을 거울이 비추는 게 아니라, 비추는 거울이 마물인 경우도 있대.” “내가 마물이라는 얘기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얘기야. 그리고 조마경이라면 태양도 비출 수 있는 거잖아. 밝게 비추는 태양도 될 수 있어.” (120∼121쪽)


 쿠마쿠라 다카토시 님 만화책 《샤먼 시스터즈》(대원씨아이,2007) 여섯 권째 읽습니다. 《샤먼 시스터즈》 여섯 권째에서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삶과 죽음이 여느 사람들 여느 자리에서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여느’ 사람이라 했지만, 나도 여느이고 너도 여느입니다. 대통령도 여느이고 군수도 여느입니다. 법관도 여느이지만 4대강사업 밀어붙이는 홍보부장도 여느입니다.

 

 누구나 여느이기 때문에 누구나 남다른입니다. 누구나 남다른 삶을 남다른 사랑으로 남다른 꿈을 일굽니다.

 

 모두들 가장 착하게 살아갈 나날입니다. 모두들 가장 참다이 누릴 나날입니다. 모두들 가장 아름다이 꽃피울 나날입니다. 삶도 아름답고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삶도 기쁘고 죽음도 기쁩니다.


- “가르쳐 줘. 어떻게 하면 쉽게 홀리지 않는지, 피할 수 있는지. 잠시라도 좋으니까.” “홀리게 하는 존재에게 그걸 묻다니. 재밌는 아가씨네. 좋아. 상대해 주지.” (147쪽)


 내가 살갗으로 쓰다듬는 코앞에서 마주해야 삶이 아닙니다. 내가 두 다리를 흙에 디딜 때에만 삶이 아닙니다. 내 몸은 스러져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내 넋은 홀가분하게 온누리를 떠돌 수 있습니다. 내 몸은 흙에 묻혀도 내 넋은 온 별나라를 누비면서 마음껏 빛날 수 있습니다.


- “언니, 할머니는?” “아.” “할머니. 할머니! 야스시! 우리 할머니 어디 갔는지 알아?” “무슨 소리야? 우리끼리 왔잖아. 할머니라니 무슨 소리야?” “아, 너야말로 무슨 소리니?” (198∼199쪽)
- “할머니도 나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쉬세요.” “그래. 고맙다.” “어디 가?” “미즈키가 일어났다고 모두에게 알려줘야지.” “안 그래도 돼! 여기 있어요.” “계속 있을 거란다.” (204∼206쪽)


 사랑스러운 님은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님은 코로도 느끼고 귀로도 느끼며 살갗으로도 느낍니다. 사랑스러운 님은 마음으로도 느끼고 생각으로도 느낍니다. 가슴으로도 느끼는 사랑스러운 님이요, 꿈으로도 느끼는 사랑스러운 님이에요.

 

 좋은 기운은 늘 내 곁에 있습니다. 나쁜 기운 또한 노상 내 곁에 있어요.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좋은 기운으로 감쌀 수 있고, 나는 내 몸과 마음을 형편없이 나쁜 기운으로 망가뜨릴 수 있어요.

 

 내가 바라는 대로 내 삶을 이룹니다. 내가 뜻하는 대로 내 삶을 이끕니다.

 

 나는 나부터 가장 좋은 길을 걷고 싶습니다. 가장 좋다고 여기는 일을 찾으면서, 가장 좋다고 꿈꾸는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아름다이 웃는 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해맑게 노래하는 내 옆지기를 보고 싶습니다. 즐거이 춤추며 어깨동무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고 싶습니다. (4345.1.27.쇠.ㅎㄲㅅㄱ)


― 샤먼 시스터즈 6 (쿠마쿠라 다카토시 글·그림,정재은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3.15./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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