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볼 수 없는 눈

 


 나는 눈을 뜨고 무언가를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나는 내 바깥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가만가만 돌아봅니다. 그러나, 막상 내 눈이 어떠한 모습이고 빛깔이며 무늬인가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는 내 앞이나 옆이나 둘레에 있는 무언가를 살펴볼 수 있지만, 정작 내 몸뚱아리를 찬찬히 살피거나 훑거나 가늠하지 못합니다.

 

 나는 바라봅니다. 나는 나 아닌 남을 바라보면서 내 삶을 꾸립니다. 나는 살펴봅니다. 나는 나 아닌 어딘가를 들여다보면서 내 삶을 꾸립니다. 남들을 바라보는 나는 남들을 거울처럼 비추며 나를 되새기는 삶일까요.

 

 머리에 달린 눈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볼 수 없다면, 마음에 깃든 눈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볼 수 있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왼눈과 오른눈으로도 내 눈 내 몸 내 삶을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온몸과 온마음으로 내 눈 내 몸 내 삶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손가락을 움직이며 바라봅니다. 내 발바닥을 움직이며 바라봅니다. 내 살갗으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내 귀로 소리와 결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내 입과 혀로 맛을 느끼며 바라봅니다. 가슴이 콩콩 쿵쿵 뛰면서 느끼는 모든 이야기들을 바라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는 아무런 삶도 사랑도 사람도 보지 못하는 꼴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있을 때에, 내 곁에 있는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깊은 밤 달빛이 좀 여리구나 싶어 생각해 보니, 곧 설이기에 아직은 그닥 밝지 않겠구나 싶으면서, 시골마을에도 곳곳에 등불이 있어 달빛을 가리는구나 싶습니다. 그야말로 환한 보름달은 등불마저 잠재울 만큼 밝지만, 오늘은 달빛이 전기불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아니, 이기지 못하는 달빛이 아니라, 전기불빛에 스러지거나 가립니다.

 

 달빛이 비추는 마당이 좋습니다. 달빛이 잠자며 캄캄한 마당이 좋습니다. 전기불빛 스미는 마당은 슬픕니다. 전기불빛이 우리 마당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까지 흘러들면 슬픕니다.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때에 빛입니다. 햇빛과 달빛을 먹어야 닭알이든 오리알이든 튼튼하고 씩씩하게 깝니다. 햇빛과 달빛을 먹어야 사람이든 푸나무이든 튼튼하고 씩씩하게 목숨을 잇습니다. 나는 햇빛을 마시고 달빛을 먹으며 햇빛을 바라보고 달빛을 누리고 싶습니다. (4345.1.1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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