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밟는 못둑 걷기
 [고흥살이 4] 아름다운 그림이란

 


 내 생일 이튿날, 형이 인천에서 고흥까지 찾아왔다. 참 먼길인데 참 고맙게 찾아왔다. 여러 날 머물다가 인천으로 돌아가던 날까지, 형하고 느긋하게 바닷가 나들이를 다닌다든지, 가까운 산에 오른다든지 하지 못했다. 형이 찾아오고 여러 날 동안 바람 모질게 불고 날이 꽤 춥기도 했고, 때맞춰 이래저래 집일을 건사하느라 몸이 무너져 끙끙 앓기까지 했다. 헌 창호종이를 떼고 새 창호종이 떼는 일을 함께 하다가 나는 그만 자리에 드러누웠다.

 

 더 재미나게 놀지 못하고 형을 떠나 보낸 날, 무언가 허전하고 아쉬우며 속이 안 좋았다. 그러나 아이들 빨래는 끝없이 해야 하고, 아이들 밥을 차려 먹여야 하며, 아이들 씻기며 집도 이럭저럭 쓸고닦아야 한다. 참으로 하루하루 눈코 뜰 사이가 없다.

 

 저녁에 빨래를 걷다가 함께 걷기로 한다. 형이 있을 때에 이렇게 함께 걸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동백마을 바로 위에 있는 지정마을 못가로 걸어간다. 네 식구끼리 있을 때에도 이 넓은 못가를 좀처럼 걷지 못했다. 지정마을과 신기마을과 동백마을 논자락을 적시는 못물이 꽤 넓다. 이 못물 있는 둑을 걷는다. 못둑은 풀밭길. 시멘트를 깔지 않아 흙을 밟을 수 있다.

 

 옆지기는 둘째를 업고 걷는다. 나는 첫째 손을 잡고 걷는다. 자동차 한 대 안 다니는 찻길을 천천히 지나는 동안, 첫째 아이는 혼자 달리기를 하겠단다. 길가 대숲에 누군가 베어 쓰러진 작은 대나무 하나를 주워서 논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앞서 가도 아이는 혼자 놀기에 바쁘다.

 

 못물에서 물고기가 펄떡펄떡 뛴다. 오리들이 물고기 잡으려고 되게 빨리 물갈퀴질을 한다. 한겨울 한복판인데 못둑에서 노랗게 꽃을 피우는 작은 풀이 있다. 첫째 아이는 어느새 대나무를 버리고 억새를 뜯어서 논다. 옆지기가 날 따스할 때에 못둑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구나.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두 눈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는걸. 이 아름다이 그려지는 그림을 손을 거쳐 종이에 옮기면 되는걸. 그림은 바로 이 아름다운 풀숲이 들판이 흙땅이 하늘이 구름이 저녁놀이 햇살이 곱게 가르치고 알려주는걸. (4345.1.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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