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손으로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연필을 잡고 쓰는 글이 아니고, 자판을 두들기며 쓰는 글이 아니다. 이 손으로 살아가는 결이 고스란히 글로 다시 태어난다. 이 손으로 집식구를 따스히 쓰다듬거나 어루만진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를 따스히 쓰다듬거나 어루만지는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집식구 맛나게 먹을 밥을 마련해서 차린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한테 맛나게 즐길 마음밥 될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내 살붙이 고마운 옷가지 정갈히 빨래한다면, 이 손으로 내 이웃과 동무 누구나 아프거나 고단한 마음을 달랠 정갈한 사랑씨앗 깃드는 글을 빚는다. 이 손으로 집식구 따스한 보금자리 포근히 보살핀다면, 이웃과 동무 어우러지는 터전 포근히 보살피는 넋 북돋우는 글을 빚는다.
다섯 살을 하루 앞둔 아이가 플라스틱칼로 빵을 썬다. 서툴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손놀림으로 빵을 썬다. 아이는 아이 손에 맞게 빵을 썬다. 아이는 손을 거쳐 제 몸을 움직인 하루를 깊이 아로새기겠지. 아이는 온몸으로 글을 쓰고, 온삶으로 글을 빚으며, 제 열 손가락 고루 움직이면서 글을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4344.12.31.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