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눕는다

 


 아이들이 함께 엎드린다. 갓난쟁이가 어머니 곁에서 엎드린 옆으로 첫째 아이가 나란히 엎드린다.

 

 아이들이 함께 눕는다. 갓난쟁이는 어머니 곁에서 눕고, 첫째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눕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섯 해를 함께 살았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첫째 아이는 네 해를 함께 살았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와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는 이제 한 해를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는 네 식구는 한솥밥을 먹는다. 한 집에서 지내며 한 방에서 잔다. 같은 책 한 권을 넷이서 돌려읽거나 나란히 읽는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먼저 읽은 글책을 아이들은 나중에 물려받아 읽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본 땅뙈기를 아이들은 나중에 함께 돌보겠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팔힘 다리힘이 빠진다면, 아이들이 빨래를 맡을 수 있을까. 아니, 이때에는 전기를 먹지 않는 빨래기계를 마련해서 이 집에 놓아 줄까. 아니, 아버지와 어머니 팔다리에 힘이 줄어들 무렵이면 아이들 옷가지 빨래할 일이 없을 테니, 조금 겨우 내는 힘으로도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옷가지쯤 너끈히 손수 빨래할 수 있으리라. 이제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저희가 마련하고 돌보며 빨래하는 삶을 일구어야지.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이가 읽을 책을 내밀 수 없다. 아이는 스스로 글을 읽을 무렵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찾는다. 어버이는 아이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 주지 않는다. 아이가 이리 가고 저리 가며 스스로 길찾기 하는 동안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길동무가 된다.

 

 책을 읽어 받아들이는 느낌은 오직 내 마음밭 넓이에 달린다. 밥을 먹어 받아들이는 느낌은, 맛은, 기운은, 기쁨은, 오직 내 혀와 입과 몸에 달린다. 좋은 밥으로 느껴 좋은 기운을 얻는다면, 좋은 글·그림·사진을 읽어 좋은 넋을 북돋우면서 좋은 사랑을 키우겠지.

 

 아이들과 같이 눕는다. 옆지기와 나란히 눕는다. 아이들과 같이 꾸리는 삶이다. 옆지기와 나란히 사랑할 삶이다. 책은 네 식구 사이에서 얌전히 제자리를 지킨다. 책은 네 식구 가슴마다 다 다른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야기열매를 맺는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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