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에 찰칵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유키 마사코 글, 서인주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종이에 앞서 마음에 담는 사진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10 : 이와사키 치히로·유키 마사코, 《마음속에 찰칵》(학산문화사,2002)

 


 이와사키 치히로 님이 ‘글에 맞춰 그린’ 그림이 아닌, 당신 스스로 좋아서 그린 그림을 살피면서, ‘그림에 맞춰 글을 넣은’ 그림책 《마음속에 찰칵》(학산문화사,2002)을 읽습니다. 안타깝다면, 2002년에 나온 책이지만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기에 헌책방에서 다리품을 팔아야 어렵사리 만날 수 있어요. 나도 이 그림책은 한 해 넘게 다리품을 판 끝에 드디어 한 권 만났습니다.

 

 《마음속에 찰칵》은 그림책입니다.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녁 그림을 봄이랑 여름이랑 가을이랑 겨울에 맞추어 곱게 나눈 다음, 철 따라 어떠한 빛깔을 사랑하면서 사진찍기 놀이를 즐길까’ 하는 이야기를 붙인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이니까, 이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로서는 사진책을 본다고 할 수 없다 할는지 몰라요. 그런데, 《마음속에 찰칵》은 사진찍기 놀이를 하는 그림책이에요. 살가이 담은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아하, 이렇게 사진을 찍는구나.’ 하고 느껴요. ‘오호, 이러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갈무리하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이를테면, 꽃내음 물씬 누리는 봄날, “새로운 친구도 생기고 ……. 오늘을 기념하며 찰칵. 아주 좋아하는 꽃도, 찍는 김에 찰칵(5∼6쪽).” 하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그림책 한쪽에는 네모낳거나 동그랗게 구멍이 뚫립니다. 구멍에 따라 ‘사진기로 들여다보듯’ 그림을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종이 한 장을 넘기면 구멍은 앞쪽 그림을 네모낳거나 동그란 구멍에 맞추어 바라봅니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사진이 되’고 ‘저기에서는 저렇게 사진이 되’는 줄 배웁니다.

 

 이리하여, 가을날에는, “저 아이의 옷은 단풍색. 마음속에 찰칵. 저 아이를 찰칵. 다가가서 찰칵. 크게 크게 찰칵. 달님도 가까이 있네요(15∼16쪽).” 하는 이야기가 이어져요. 가을날 단풍빛을 사진으로 담을 때에, 내 눈에 아름답다고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나란히 담아요.

 

 무언가를 기리면서 사진에 담을 때에는 어느 날 누군가하고 어울리던 ‘모습’뿐 아니라 누군가하고 어울리던 ‘이야기’를 담는답니다. ‘이야, 예전에는 이와 같은 모습이었지.’ 하고 떠올리도록 이끄는 사진이 아니에요. ‘이야,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 하고 떠올리도록 이끄는 사진이에요.

 

 사진은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꾸준히 찍어서 사진첩으로 엮으면, 이 사진첩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사진을 들여다볼 때에는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사진첩을 넘길 때에는 이야기꾸러미를 넘기는 셈이에요.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사진을 찍을 때에는 ‘아이가 예뻐 보이는 모습’을 담지 않아요. ‘아이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요. 그래서 이 아이가 나중에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그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누리고 부대꼈어.’ 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밭이 되는 사진입니다.

 

 옛날 옛적 모습, 이른바 추억을 담는 사진은 아닙니다. 사진은 추억을 만들려고 찍지 않아요. 사진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고루 사랑할 내 삶을 아끼고 싶어 빚는 이야기샘입니다. 이야기가 샘솟는 샘인 사진이에요. 지난 한때에 머물도록 하지 않습니다. 옛날을 자랑하거나 우쭐거리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오늘 하루 즐겁게 누렸다는 보람을 기쁜 웃음과 눈물로 곱게 빚는 사진이에요.

 

 사진은 빛으로 일구는 그림이자 글이요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빛무늬와 빛결을 예쁘게 사랑하면서 가꾸는 꿈이자 넋이요 무지개예요. 사진기 있어 종이에 남기는 사진을 얻겠지요. 사진기 없으면 가슴으로 오래오래 아로새기는 이야기씨앗을 마음밭에 심어요.

 

 나는 우리 집식구들 사진을 찍으면서 종이로도 이야기를 아로새기지만, 이에 앞서 내 눈을 거쳐 내 가슴에 우리 집식구들 삶을 곱게 새깁니다. 먼저 내 가슴에 새기는 집식구들 삶이 아니라면 사진기를 들지 못해요. 언제까지나 내 마음밭에 고이 스미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사진으로 옮기지 못해요.

 

 이와사키 치히로 님 그림에 새 옷을 입히며 ‘사진 이야기 그림책’을 일군 유키 마사코 님이 더없이 고맙습니다. 좋은 그림에 좋은 이야기를 붙일 줄 아는 분이라면, 좋은 삶을 좋은 사진으로 옮기면서 활짝 웃을 줄 알겠지요. 마음속에 찰착 하고 담을 수 있어서 종이로 아로새길 모습과 이야기를 사진기로 찰칵 하고 담습니다. (4344.12.29.쇠.ㅎㄲㅅㄱ)


― 마음속에 찰칵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유키 마사코 글,서인주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12.15./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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