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장인 클로드 2 - 배려해주는 여자
오제 아키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기
 [만화책 즐겨읽기 86] 오제 아키라, 《술의 장인 클로드 (2)》

 


 면내나 읍내에 나가 먹을거리를 장만할 때에 보리술을 두 병쯤 사곤 했습니다. 요 며칠은 보리술은 안 사고 다른 먹을거리만 가볍게 장만하고 돌아옵니다. 술 두 병쯤 가방에 넣지 않으면 그만큼 가방 무게가 가볍습니다.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도 단출합니다. 하루에 보리술 500들이 두 병을 마시면 2500∼2600원쯤이니, 이틀 안 마시면 5000원, 나흘 안 마시면 1만 원입니다.

 

 마시면 나쁘고 안 마시면 좋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마시면서 ‘아, 좋다.’ 하고 느끼거나 안 마시면서 ‘아, 안 마셨다.’ 하고 느끼는 일은 바보스러운 줄 압니다. 그런데, 이렇게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해서 나쁘지는 않아요. 다만, 이런 대목을 느끼거나 생각한다면, 그만큼 내가 더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내 삶을 느끼거나 생각할 틈이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나는 스스로 아직 바보스러운 줄 잘 느끼면서 바보스러운 버릇을 털지 못하는 셈입니다.

 

 어제 낮,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백나무 옷장 두 짝이 들어왔습니다. 편백나무 옷장을 짜신 분이랑 일꾼이랑 저랑 셋이 낑낑대며 가운뎃방에 옷장을 들입니다. 시원하고 미더운 옷장이 떡하니 들어선 모습을 대견스레 바라보면서 막걸리라도 한 잔 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전거를 몰고 면에 다녀올까 싶어 자전거를 몰다가, 아니야, 면을 다녀오자면 혼자서 십 분이면 넉넉하지만, 옷장 들이느라 예전 옷장 빼고 짐을 잔뜩 널브러뜨렸는데, 오늘 저녁 잠을 어떻게 자려고,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얼른 집으로 돌아옵니다. 옷장을 들이느라 미룬 빨래를 합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방을 치웁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조금 가지런히 놓고 방바닥에 어질러진 물건을 치웁니다. 끝방은 이듬날 치우기로 하고, 잠자는 방부터 말끔히 해 놓습니다. 방바닥을 쓸고 방바닥 깔개를 마당으로 들고 나와서 텅텅 텁니다.


- “쌀을 술로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좋은 술로 만드는 건 기적이지.” (8쪽)
- ‘한 됫 병의 준마이슈는 3kg의 쌀. 6만 개의 쌀알. 두 평의 논!’ (87쪽)


 하루 일을 즐거이 마무리하면서 마시는 술 한 잔은 시원합니다. 하루 일을 기쁘게 마감하면서 마시는 차 한 잔은 개운합니다. 하루 일을 보람차게 끝내고 마시는 물 한 잔은 달콤합니다.

 

 무엇을 마시든 좋습니다. 내 몸을 제대로 돌아보면서 내 마음을 알뜰히 돌볼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내 몸을 사랑스레 보살피지 못하거나 내 마음을 어여삐 건사하지 못하면 슬픕니다.

 

 내 몸을 생각합니다. 나는 냄새를 잘 못 맡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냄새를 잘 못 맡으며 살았습니다. 냄새를 잘 못 맡으니, 맛을 잘 못 느낍니다. 너무 어린 날부터 코가 나쁘다 보니, 냄새랑 맛하고는 무척 동떨어진 채 살았고, 이렇게 살아오면서, 아무래도 내 몸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사랑하는 길도 자꾸자꾸 잊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내 몸에 살가이 스며들 좋은 밥이라 한다면 냄새를 아주 못 느끼지 않습니다. 코와 혀가 너무 무디어 맛은 못 깨닫지만, 느낌으로 ‘참 좋구나’ 하고 받아들이거든요. 어린 날 어머니가 당근물을 내어 주실 때에, 요즈막 옆지기가 당근물을 내어 건넬 때, 이 당근물이 내 몸에서 얼마나 좋게 스며드는가를 느낌으로 알아챕니다. 다만, 이 당근물을 예나 이제나 어떤 맛 어떤 내음인가는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 “히로,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 줘. 나는 반성하고 있으니까. 이 쿠라에서 만들어지는 술의 80%는 보통주잖아? 이 쿠라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술이야. 그리고 존경하는 주임님이 겨울 내내 만든 술이기도 하고. 물론 나는 양조용 알코올을 많이 사용한 술은 화학적인 맛이 나서 싫어하지만, 그런 내 취향을 강요할 필요는 없었던 거야.” (11쪽)
- “한 됫 병 안에는 술뿐만 아니라 만든 사람의 정성도 담겨져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 (146쪽)


 오늘 하루 고단했지만 힘껏 움직여 주어 고맙게 여기는 내 몸을 달래면서 술 한 병 마시는 날, 내 코와 혀는 술맛을 딱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술을 맨 처음 마시던 때부터 내 코와 혀는 술맛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그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싸한 느낌만 압니다. 그러나, 좋이 빚은 술과 좋지 못하게 빚은 술을 잘 느낍니다. 가만히 살피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좋은 느낌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할 때에는, 굳이 술이 아닌 맑은 물 한 모금이어도 반갑습니다. 신문배달로 먹고살며 지내던 때, 이른새벽부터 골목을 내달리며 신문을 돌리고 나서 지국에서 물 한 잔 마시며 아주 시원했습니다. 고된 군대에서 틈틈이 마시던 강원도 깊은 멧골짝 샘물은 참으로 시원했습니다. 네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 시골집 물 또한 내 몸을 다스리는 좋으면서 시원한 마실거리가 되겠지요.

 

 좋은 물은 좋은 물 그대로 시원합니다. 좋은 물로 밥을 지으면 좋은 밥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좋은 물로 푸성귀를 얻으면 좋은 먹을거리로 새삼스럽습니다. 좋은 물로 술을 얻으면 좋은 마실거리로 거듭납니다.

 

 만화책 《술의 장인 클로드》 2권을 읽습니다. 내가 술을 즐겨 마시니 이 만화를 읽는다 할 테지만, 오제 아키라 님 만화는 ‘술 이야기’만 들려주는 만화가 아니기 때문에 즐거이 읽습니다. 술에 담는 넋을 밝히고, 술이 이루어지는 길을 보여주며, 좋은 술을 얻고자 좋은 삶을 일구는 사람들하고 어깨동무하는 꿈을 들려주기에 고맙게 읽습니다.


- ‘가게는 조금씩 변화시켜 가자. 서두를 필요없어. 맛있는 니혼슈도 적당히 늘렸지만 손님에게 강요하지 않을 거야. 모두 내가 직접 매일 밤 마셔 보고 좋아진 술뿐인걸. 좋아질수록 자신이 생긴다. 데운 술도 시험해 봤다. 잔뜩 뜨겁게 해야 맛있는 술, 미지근해야 차분히 안정되는 술, 맛있었다. 일 때문에 시작했지만 매일 밤이 즐거웠다.’ (13쪽)
- ‘‘맛있다’라는 한 마디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33쪽)


 술을 빚는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술을 다루는(사고파는) 훌륭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술을 다루는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술을 마시도록 하는 좋은 술집 돌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훌륭한 사람이 있겠지요.

 

 좋은 책 하나 빚으려는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책 다루려는 훌륭한 책집 사람이 있으며, 좋은 책 맞아들이려는 훌륭한 사람이 있어요.

 

 좋은 흙을 바탕으로 좋은 흙일꾼과 좋은 살림꾼이 있습니다. 좋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좋은 어버이와 좋은 동무와 좋은 이웃이 있습니다.


-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달에 갈 거야!” (142쪽)


 바깥이 아주 깜깜합니다. 아, 오늘이 동짓날인가. 동짓날 맞이하는 깊고도 깊은 어두운 밤인가.

 

 부엌에서 물 한 잔 마십니다. 방바닥에 불을 넣습니다. 그야말로 까만 시골마을을 가만히 내다 봅니다. 조용히 방으로 돌아옵니다. 식구들은 새근새근 꿈나라를 누립니다. 나는 이 식구들하고 언제까지나 새근새근 꿈나라를 함께 누리면서, 곧 동이 터 새 하루 맞이하면 즐거이 햇살을 받아먹겠지요.

 

 아 참. 동짓날은 팥죽이던가. 우리 집에 팥이 있던가. 팥죽은 어떻게 쑤지. 아이들 어버이라 한다면 팥죽을 집에서 쑤어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오늘은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빚으며 보낼까.

 아침에 일어나서 부엌을 뒤졌을 때에 묵은 팥이 빼꼼 고개를 내밀어 주기를 빌어 봅니다. 집일을 맡아 한다면서 팥이 있는지 없는지, 오늘이 동짓날인지 아닌지조차 헤아리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참 바보스럽습니다. (4344.12.22.나무.ㅎㄲㅅㄱ)


― 술의 장인 클로드 2 (오제 아키라 글·그림,임근애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7.11.15./3800원)

 

(겉그림 사진을 안 긁고 책을 도서관에 갖다 놓았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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