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 과학은 내친구 25
고바야시 미노루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박숙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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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비행기를 접으며 논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20] 하야시 아키코·고바야시 미노루, 《종이비행기》(한림출판사,2008)

 


 나는 국민학생이던 때에 종이비행기를 즐겁게 날렸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이던 때에도 종이비행기를 즐겁게 날렸습니다. 국민학생 때에는 종이가 아주 드물지는 않았으나 아주 흔하지도 않았어요. 종이가 있다 하더라도 딱지접기를 하느라 빠듯하니까 종이비행기까지 접지 않곤 했어요. 좋다 싶은 종이를 얻는다면, 이를테면 달력 종이라든지 포장종이를 얻을 때에는 뒤집어서 교과서를 싸는 데에 쓰고, 때로는 종이비행기를 접곤 했습니다.

 

 잘 접은 종이비행기 하나는 여러 날 가방에 곱게 챙기고 다니면서 날립니다. 집에서도 학교 운동장에서도 교실에서도 길에서도 날립니다. 힘껏 던지듯 날리기도 하고, 살살 손을 놓듯 날리기도 합니다. 동무들하고는 공차기나 공치기뿐 아니라 제기차기나 돌놀이나 구슬놀이나 땅놀이나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나 갖은 놀이가 많으니,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기 하나에만 마음을 쏟지 않아요.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를 하고, 저 놀이를 하고는 그 놀이를 합니다.


.. 종이비행기예요. 모양도 가지가지. 어떤 모양으로 날아갈까요? ..  (3쪽)


 중·고등학생 때에는 그만 ‘동무들과 마음껏 놀기’가 꽉 억눌립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더는 놀 나이가 아니’라고 못박힙니다. 무슨 놀이를 할라치면 ‘너희가 애들이냐’는 핀잔을 듣습니다. ‘아이도 아니요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가 되고 맙니다. 말이 좋아 청소년이요 사춘기이지, 정작 푸른 삶 푸른 꿈 푸른 빛을 북돋우는 일은 몹시 드물었습니다. 오직 하나, 더 일찍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들볶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학교 가는 길에 학원 광고 하는 쪽글을 많이 받습니다. 국민학생 때에는 구경을 못하던 종이가 넘칩니다. 국민학생 때라면 딱지를 접느니 개구리를 접느니 종이비행기를 접느니 모자를 만드느니 하면서 종이 하나 얻으려고 손을 벌려야 하는데, 중학생 때부터 종이가 남아돕니다.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버려지는 종이가 매우 많아요.

 

 메마른 시험공부와 팍팍한 대학바라기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광고종이를 접습니다. 종이비행기로 하나하나 다시 태어납니다. 큼지막한 종이로는 큼지막한 종이비행기를 접습니다. 종이비행기를 잔뜩 만들어 여럿을 한꺼번에 날리기도 합니다. 어차피 교실 안팎 청소는 우리가 하니까, 일부러 교실 뒤쪽 빈터로 종이비행기를 잔뜩 날립니다. 교장선생이나 교무주임이 무어라 떠들건 말건, 종이비행기 날린 ‘범인’을 잡아내겠다며 으르렁거리든 말든, 감옥처럼 갑갑한 곳에서 몰래몰래 종이비행기를 날립니다.


.. 날개가 넓은 비행기. ‘휘잉’ 하고 날아가요. 원을 그리며 날아가요 ..  (7쪽)


 한창 신나게 날리면서 놀던 종이비행기는 어느새 하나둘 사라집니다. 개골창에 빠지고, 찻길에 떨어져 자동차가 밟으며, 높은 울타리 너머로 날아갑니다. 교사들한테 빼앗기며 꿀밤을 맞거나 얼차려를 받고, 소지품검사 때 빼앗기며 쓰레기터에서 불에 탑니다.

 

 그림책 《종이비행기》(한림출판사,2008)를 펼치면서 옛일을 떠올립니다. 나는 언제부터 종이비행기를 더는 안 접고, 더는 날리지 못하며, 더는 헤아리지 못했는가를 되새깁니다.

 

 군대에서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렸다가는 고참이나 하사관이나 소대장이나 중대장한테 신나게 얻어터집니다. 아니,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릴 만한 틈조차 없고, 빈종이 하나 얻을 구석이 없지만, 마음을 놓거나 마음을 쉴 겨를이 없습니다. 신문배달을 하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던 무렵에도 종이비행기를 접지 못합니다. 여느 길이란 없이 온통 찻길투성이라, 느긋하게 종이비행기를 날리지 못해요. 어른인 나도, 동네 아이들도, 종이비행기는 날리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회사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껏 종이비행기를 접을 만해요. 네 식구 조용히 지낼 시골집이고, 첫째 아이는 열흘 뒤 새해를 맞이하면 다섯 살이거든요. 첫째 아이하고 신나게 종이비행기 접어 날리며 놀 수 있어요. 이제는 종이 많고, 빈터 넓으며, 아이가 어버이랑 좋은 놀이동무입니다.


.. 비행기 두 개를 겹쳐서 날리면 어떻게 될까요? ..  (20쪽)


 일본에서 1973년에 처음 나온 그림책 《종이비행기》입니다. 하야시 아키코 님 퍽 예전 빛느낌과 무늬와 결을 느끼는 그림책입니다. 한국에서는 2008년에 옮겼으니, 서른다섯 해 묵은 그림책을 옮긴 셈일 텐데, 일본에서는 1973년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사랑받겠지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한국에서 1973년에 누군가 그림책을 내놓거나 글책을 내놓거나 사진책을 내놓았다 할 때에, 2011년 오늘 돌아보면서 ‘참 좋고 애틋하며 아름답구나’ 하고 여기어 새롭게 찍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더없이 예쁜 그림책이니까 일본에서 1973년에 나온 녀석이지만 2008년에 한글판으로 나올 만합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꿈같으며, 한편으로는 슬픕니다. 한국 어른들 스스로 종이비행기 날리며 놀 말미가 거의 없는 채 살아가니까, 한국 어른들 스스로 한국 아이들한테 종이비행기 이야기를 살포시 물려줄 만한 그림책을 빚지 못하거든요. 아니, 아이들한테 물려주기 앞서 어른들 스스로 예쁘게 놀 줄 몰라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보고 신나고 즐겁게 놀라며 《종이비행기》 같은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겨 선물한다지만, 막상 어른들 스스로 즐거우며 신나게 놀도록 이끌거나 돕거나 북돋우는 이야기책이 퍽 드뭅니다.

 

 너무 바쁜 하루라 한다면, 너무 벅찬 하루라 한다면, 너무 고단한 하루라 한다면, 아이들이랑 그림책을 천천히 넘기다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보셔요. 굳이 그림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아이하고 종이 한 장 나누어 쥐면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보셔요. 길에서 날려도 좋고 집안에서 날려도 좋습니다. 종이 한 장에 글월 곱다시 적어 비행기로 날려 보셔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한테 종이비행기를 날려 보셔요. (4344.12.22.나무.ㅎㄲㅅㄱ)


― 종이비행기 (하야시 아키코 그림,고바야시 미노루 글,박숙경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8.6.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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