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밟는 어린이
2011년이 저물기 앞서 드디어 네 살 사름벼리가 아버지를 밟으며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처음으로 담는다. 옆지기는 그동안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생각을 못 했달 수 있고 안 했달 수 있으며, 찍을 만한 형편이 못 되었달 수 있다.
아버지는 원고지에 시를 옮겨적는다. 올 한 해 쓴 동시 백 꼭지를 여러 날에 걸쳐 천천히 꾹꾹 눌러적는다. 이 동시가 예쁜 책 하나로 태어날 수 있기를 꿈꾸면서 반듯반듯하게 새겨적는다.
그런데 네 살 사름벼리는 아버지가 무얼 하는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슬쩍 아버지 등을 타고 오른다. 등을 타고 오르더니 두 발로 꼿꼿하게 선다. 두 발로 꼿꼿하게 서더니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더니 이내 춤을 춘다. 야, 이 녀석아, 원고지에 글을 쓰는 아버지 등을 밟고서 춤노래를?
너희 옷가지를 빨래하랴, 네 밥을 차리랴, 집 안팎을 쓸고닦으며 치우랴, 등허리가 앞으로 휠 만하니까, 이렇게 밟고 춤노래를 펼치면서 등허리를 펴 주는 셈이니?
그예 원고지 한 장을 버린다. 애써 쓴 시를 다시 옮겨야 한다. 그래도 아이가 등을 밟고 춤노래를 선보이는 동안 예닐곱 꼭지를 옮겼다. 팔목과 팔뚝과 팔꿈치가 몹시 뻑적지근하다. (4344.12.21.물.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