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빛 글쓰기

 


 누런쌀을 가루로 빻고, 누런쌀을 볶아 가루로 빻는다. 이 가루를 국그릇에 알맞게 담아 작은 상에 올린다. 옆지기가 이 가루를 먹고, 옆지기가 이 가루를 물에 알맞게 섞어 아기한테 먹인다. 첫째 아이는 제 어머니 곁에 앉아 이 가루를 먹는다.

 

 빛깔만 고운 가루일까. 따스한 손길 듬뿍 담긴 가루일까. 햇살과 바람과 맑은 물과 흙내음 고루 밴 가루일까.

 

 곡식가루는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곡식가루가 새로 불어넣은 숨은 사람을 살린다. 새로운 숨으로 살아나는 사람은 씩씩하게 두 발을 디디며 하루를 연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들던 꿈누리에서 깨어나며 빛나는 새날을 맞이하겠지. 나이 마흔이 된 어른이든 나이 여든이 된 어른이든, 이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언제나 빛나는 새날을 나란히 맞아들이겠지.

 

 오늘은 읍내 장날. 네 식구 함께 마실을 다녀올 수 있을까. 마실을 다닌다면 어떤 먹을거리를 장만하면 좋을까. 톳이나 물미역을 장만할까. 다른 싱그러운 먹을거리로 무엇을 헤아리면 좋을까.

 

 달게 잠을 자고 일어날 새 아침에, 어제 하루 쌓인 찌뿌둥한 기운이 말끔히 씻기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내 몸과 마음에 고운 가루빛처럼 고운 생각빛이 천천히 움을 트며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다. 나 스스로 따스한 생각빛을 키우면서 따스한 나날을 누릴 때라야, 내 손으로 짓는 밥이 따스할 수 있다. 고운 가루빛마냥 고운 생각빛을 북돋울 때에 비로소, 내 손을 거쳐 태어나는 글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하고, 따사로이 생각하며, 넉넉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자. 살아가는 결 무늬 내음 빛깔이 찬찬히 어우러지면서 꽃이 된다. 어떤 꽃이 되고픈지는 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4344.12.1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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