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옷 선물받기

 


 옆지기 앞으로 소포꾸러미 하나 온다. 두꺼운 비닐로 싸인 말랑말랑한 소포꾸러미이다. 무엇일까. 옆지기는 뜨개질하느라 바쁘기에 내가 가위로 살살 뜯는다. 두꺼운 비닐이니까 나중에 어디엔가 되쓰면 좋겠다 싶어 살살 뜯는다.

 

 봉투를 다 뜯고 알맹이를 꺼낸다. 알맹이는 뜨개옷. 뜨개옷을 뜨는 옆지기한테 뜨개옷 선물이라니. 마치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한테 책을 선물하는 일하고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소포꾸러미에서 옷이 나오니 첫째 아이가 달려든다. 어쨌든 아이가 집어 보고는 예쁘다 싶으면 “이거 내 거야? 이거 벼리 거야?” 하고 말하기 무섭게 누가 입어 보라 하지 않았어도 신나게 재빨리 입는다. 다른 때에는 추운 날씨에 옷 좀 입어라 입어라 백 번 이백 번 노래를 해도 들은 척을 않더니.

 

 아침부터 뜨개질을 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무렵 “이런, 잘못했어. 다 풀어야 해.” 하고 말하기 일쑤인 옆지기는 첫째 아이 조끼를 뜨느라 이레 넘게 품을 들이지만 이제 겨우 앞판을 끝냈단다. 옆지기 앞으로 소포꾸러미를 보내신 분은 이 옷을 뜨는 데에 얼마쯤 품을 들이셨을까. 이 옷을 뜨면서 이 옷을 입을 아이들 생각에 얼마나 설레고 기뻤을까.

 

 나는 내가 만들거나 쓴 책을 선물하면서 언제나 내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랑한다. 이 책 하나가 태어나기까지 수많은 집일을 치르면서 밤과 새벽마다 틈을 쪼개어 글 하나 바지런히 쓰고 또 써서 열매를 맺는다. 나는 내 사랑열매 땀열매 꿈열매를 책으로 여미어 선물한다. 나한테 책값을 미리 주는 분이 있고, 때로는 나한테 살림돈이 될 만한 목돈을 건네는 분이 있다. 나는 거저로 책을 보내기도 하고, 값을 받고 팔기도 한다. 선물로 준 책에 내 이름 석 자 적어 달라는 분이 있으면, “이름을 적으려면 책값을 주셔야 해요.” 하고 덧말을 붙인다.

 

 뜨개옷을 꼼꼼이 살피지는 못했는데, 뜨개옷을 짓는 분들 가운데 어느 한켠에 당신 이름 석 자를 새겨넣는 분이 있을까. 누구한테 선물하는 뜨개옷이라 하더라도 뜨개질한 사람 이름 석 자를, 또는 닿소리를 따 ‘ㅈㅇㄱ’처럼 떠 넣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ㅈㅇㄱ 4344’라든지 ‘ㅈㅇㄱ 2011’ 같은 글을 넣을 수 있겠지.

 

 네 살 아이는 단추를 아주 잘 꿴다. 돌이 되기 앞서부터 제 옷 단추를 제가 꿰고 끌르려 했으니, 네 살이라면 얼마나 잘 꿰겠나. 이 예쁜 아이한테 예쁜 뜨개옷을 보낸 분은 오늘 하루 어떤 예쁜 아이들하고 예쁜 삶을 일구셨을까. 우리 집 예쁜 아이가 밤에 뒤척이면서 아버지를 깨우고, 또 혼자서 중얼중얼 잠꼬대를 한다. 아버지는 이불을 아이 목덜미까지 여며 주고 일어나서 새벽 글쓰기를 한다. (4344.12.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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