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빨래


 사람들은 으레 ‘내 집 갖고 싶어’ 하고 말하지만, 정작 ‘내 집 갖기’를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장만한다는 ‘내 집’이란 거의 다 ‘아파트’이면서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하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면서, 내 아이들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두고두고 살아갈 만한 보금자리를 ‘내 집 갖기’라는 꿈으로 꽃피우는 사람을 만나기란 너무 힘들다.

 우리 네 식구는 ‘우리 집’을 장만했다. 우리한테 있는 돈으로 장만한 집은 아니다. 우리 네 식구가 살아오며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일구는 책이 밑힘이 되어 둘레에서 도움을 받아 장만한 집이다. 살림집과 책터가 아직 함께하지는 못한다. 우리한테 알맞춤한 책터이면서 살림집을 제대로 꿈꾸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겨우 살림집만 우리 집으로 마련했다. 앞으로 참답고 예쁘면서 착하게 책터를 함께 꿈꾸어서, 이 고운 살림집과 마주할 어여쁜 책터를 일구자고 생각한다.

 네 식구 살림집에는 마당 한켠에 후박나무 예쁘게 자랐다. 몸무게 이십 킬로그램이 안 되는 첫째 아이는 나무타기를 하며 오를 만하다 싶지만, 제대로 나무타기를 하자면 우리 아이 때까지는 힘들고, 우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 낳을 아이 때는 되어야지 싶다.

 이 후박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생각에 젖는다. 후박나무를 이만큼 돌본 할머님이 고맙고, 이 고마운 할머님 손길처럼 나와 옆지기가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나무를 물려주면서 아이들이 저희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어버이 손길이 될 만한가 하고 생각에 젖는다. 나는 살구나무를 좋아하고 옆지기는 잣나무를 좋아하는데, 따스한 날씨인 이곳 보금자리에 잣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잣나무 몇 그루 우리 집터에 심고 싶다. 살구나무는 꼭 두 그루만 우리 집에 심고 싶다. 살구꽃과 잣꽃이 어우러지는 내음은 어떤 느낌일까.

 볕이 좋던 며칠 앞서, 무거운 빨랫대를 밖에 내놓고 다시 들이고 하다가, 비로소 빨랫줄 걸어야지 하고 느끼면서 후박나무 가지 사이에 줄을 엮는다. 나무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나무에 한쪽을 건다 하면 다른 한쪽은 처마에 박힌 못에 걸어야 하는데 집이 견딜 만한가 근심스러웠다. 틀림없이 이불을 널기는 벅차겠지. 그러나 둘째 기저귀 빨래는 얼마든지 널 만하다고 느낀다. 아니, 이제서야 느낀다. 가벼운 빨래를 널면 되잖아.

 새 보금자리에 깃든 지 한 달 보름만에 빨랫줄을 건다. 일찍부터 걸고는 싶었으나 미처 못 건 빨랫줄을 후박나무 가지에 걸친다. 오늘 비가 뿌리겠네 하고 생각했으나 비오기 앞서 조금이라도 바람에 마르라며 새벽빨래를 해서 기저귀를 내놓는다. 바람을 맞으며 팔랑거리는 기저귀는 햇살과 구름과 바람에다가 후박나무 기운이랑 동백꽃 내음을 함께 맞아들이겠지.

 빽빽히 걸면 기저귀 여섯 장을 널 만한 후박나무 빨래줄을 바라보면 나 혼자 그저 즐겁다. 빨래를 널 때에도, 빨래를 걷을 때에도, 빈 빨랫줄을 쓰다듬을 때에도 즐겁다. 후박나무야, 우리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네 아이들한테도 곱게 사랑을 나누어 주렴. (4344.1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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