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푸대 나르기


 도서관에서 책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나절, 마을회관 앞을 지나가는데, 우리 웃집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경운기에 찰벼푸대를 잔뜩 싣고 멈춘다. 풍양농협에 내다 파시려고 이렇게 내놓으시는구나 싶다. 지난해까지 틀림없이 두 분이 이 많은 쌀푸대를 나르셨겠지. 올해까지도 논에서 거둔 쌀을 푸대에 담아 경운기에 두 분이 싣고는 집안 마당에 두었다가 이렇게 다시 두 분이 싣고는 회관 앞에 쌓으시겠지.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졸려서 아버지 품에 안긴 아이를 땅에 내려놓는다. 조금 기다려 주라 하고는 일손을 거들겠다고 말씀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두 분이 해야 한다며 얼른 아이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란다. 그러나 가방이며 짐을 다 내려놓고 다시 말씀을 여쭈니, 그럼 하나만 들어 보라 말씀한다. 40킬로들이 쌀푸대 하나를 들어 옮긴다. 이윽고 아주 스스럼없이 다른 쌀푸대도 나른다. 이 쌀짐을 할머니는 경운기에서 ‘들기 좋도록 아래로 내리기’만 하고 할아버지 홀로 들어서 나르셨구나 싶다. 내가 거들지 않더라도 두 분은 두 분 빠르기에 맞게 아주 천천히, 아주 더디게, 아주 품을 들여 하나씩 나르셨겠지. 그러고는 다시 경운기에 타고 당신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서로 등허리를 주무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셨겠지.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우리 논을 얻어 우리 쌀섬을 질 수 있으면서,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논에서 나올 쌀푸대도 함께 질 수 있는 날을 꿈꾼다. (4344.11.2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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