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짚는 손


 첫째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잔뜩 장만한다. 저녁나절, 하루가 저물 무렵 저녁밥 먹고 나서 방바닥에서 뒹굴며 그림책을 집는다. 첫째 아이는 스스로 내키는 그림책을 집어서 펼친다. 그래도 그림책 쥐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 함께 읽으면 더 좋아할까.

 옆지기가 둘째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넘긴다. 둘째 아이가 그림책을 함께 쥐기도 하고, 그림 있는 자리에 손을 뻗어 짚기도 한다. 첫째 아이도 이무렵 이렇게 놀았겠지. 다만, 둘째 아이한테는 바람씻이랑 찬물더운물씻이를 아직 못 한다. 밥차림 다스리기도 제대로 못 한다. 해야 할 일이 많고 다스릴 살림이 벅차다고 느껴 둘째 아이 아토피 털어내는 데에 마음을 못 둔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첫째 아이를 낳아 살아갈 때에는 일이 적거나 없었겠나. 어린 갓난쟁이가 아토피를 비롯해 힘겨운 몸앓이를 스스로 이기기란 참 버겁다. 어쩌면 하루이틀 흐르는 나날이 저절로 풀어 준다 할는지 모르지만, 어버이로서 옳게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나날이라 한다면, 아이 스스로 기운을 낼 수 없다. 나부터 기운을 차리고, 나부터 따사로운 숨결을 북돋아야 한다. 나부터 새힘을 내고, 나부터 모든 일을 한결 씩씩하게 어루만져야 한다.

 책을 짚는 손은, 책에 깃든 이야기를 지식으로 담는 손이 아니다. 책을 짚는 손은 온몸으로 사랑을 실어 따사로이 살아가는 손이다. (4344.11.1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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