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있어야 할 책
꼭 있어야 할 책을 사서 읽으면 된다. 있으면 좋은 책이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간수해야 할 책까지 사서 읽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는 이제껏 있으면 좋은 책을 많이 장만했고, 사라지지 않도록 간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책을 참말 잔뜩 건사하며 살았다.
빈집을 치우면서 생긴 쓰레기를 장인어른 짐차에 그득 싣고 고흥쓰레기매립장으로 간다. 빈집에서 나온 쓰레기 적잖은 푸대를 한 번 내다 버렸으나 또 잔뜩 나왔기에 스무 푸대가 조금 안 되게 담아서 싣고 가는데, 모두 540킬로그램 나온다. 비가 새는 헌 기왓장이랑 마당에 깔렸던 흙먼지랑 이장님이 가져가신 낡은 쇠붙이랑 얼기설기 얽힌 낡은 전깃줄이랑 이것저것 모두 헤아리면, 조그마한 시골 빈집에서 나온 쓰레기가 1톤쯤 되는구나 싶다.
쓰레기매립장으로 찾아가 쓰레기를 버리는데, 참 고약하구나 싶은 냄새가 몸에 밴다. 수많은 사람들 손을 거친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커다란 멧자락을 이룬다. 이 냄새는 참 끔찍하겠지. 사람 스스로 빚은 물질문명이 내는 냄새일 텐데, 쓰레기매립장은 읍내하고 멀찍이 떨어진 외딴 곳 안쪽 깊숙하게 자리한다. 어디에서고 쓰레기매립장이 보이지 않는다.
7만이 좀 안 되게 살아가는 작은 군 쓰레기매립장이기에 참 작다 할 텐데, 천만이 훨씬 웃도는 서울이나 경기도 쓰레기매립장이라면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아니, 서울은 구 하나조차 아닌 동 하나가 내 보금자리 고흥군보다 훨씬 크다 할 테고, 쓰레기는 더욱 많이 나올 텐데, 동이나 구마다 쓰레기를 어떻게 건사해서 버리거나 다룰까.
꼭 있어야 할 책을 사면 걱정스럽지 않다. 꼭 있어야 할 책을 사면 사랑스럽다. 내 마음은 내가 꼭 아낄 사람을 사랑할 때에 따스하다. 내 생각은 내가 꼭 어깨를 겯을 동무를 믿을 때에 너그럽다.
꼭 자야 할 잠을 잔다. 꼭 먹을 밥을 먹는다. 꼭 입을 옷을 입는다. 꼭 일굴 흙을 일군다. 꼭 벌 만한 돈을 번다. 꼭 할 이야기를 한다. 꼭 눌 똥오줌을 눈다. 꼭 보살필 살붙이를 보살핀다.
조복성 님이 쓴 곤충 이야기 담은 책 하나면 넉넉하리라. 굳이 1934년에 낸 《조선의 접류》라는 책을 캐내어 갖추어야 하지 않는다. 도로시아 랭 사진책을 꼭 갖추어야겠는가. 나가쿠라 히로미 님 사진책 번역된 판 하나를 갖추어도 된다. 내가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책쉼터를 마련해서 꾸린다 하더라도, 모든 사진책을 다 장만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참으로 사랑할 책을 예쁘게 사랑하면서 갖추어야 한다. 내가 늘 즐기면서 아낄 만한 책을 즐기면서 아껴야 한다. 옆지기가 들려주는 말 한 마디 두 마디 고맙게 아로새기자. (4344.11.17.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