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칼에 손가락 베기


 몇 해 만에 새 칼을 샀나 모르겠다. 참 오랜만에 새 칼을 샀다. 고흥읍 장날에 맞추어 마실을 다녀오며 새 칼을 샀고, 장마당에서 능금 몇 알을 샀으며, 집으로 돌아와서 능금 껍질을 새 칼로 깎다가 그만 엄지손가락 첫째 마디를 톡 하고 끊는다. 앗 따가와 하면서 칼을 개수대에 냉큼 던진다. 히유 하고 숨을 몰아쉰 다음 칼을 다시 쥐고 능금을 깎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른다. 안 되겠구나 싶어 옆지기한테 나머지를 깎아 달라 말한다. 그동안 무딘 칼을 쓰다가 잘 드는 새 칼을 쓰니 힘을 옳게 맞추지 못했다. 할 일이 많은데 손가락을 베면 어쩌나 근심스럽다. 옆지기는 나보고 빨래를 하지 말란다.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참 바보스럽다. 반창고를 붙인다. 책 갈무리는 장갑을 끼고 한다. 장갑을 낀 손으로 걸레를 쥐어 책꽂이 먼지를 닦는다. 맨손으로 걸레를 쥐어 닦을 때에는 책꽂이 덜 닦인 데를 느끼는데, 장갑 낀 손으로는 얼마나 제대로 닦았는지 잘 모르겠다. 으레 맨손으로 일하니 장갑 낀 손이 익숙하지 않다.

 하루 일을 마친 저녁나절 둘째 갓난쟁이를 씻긴다. 아무 생각 없이 씻기는데, 옆지기가 괜찮느냐고 묻는다. 왜 묻나 궁금했는데, 칼에 베어 뜨끔할 텐데 씻겨도 괜찮냐는 소리였다. 느끼지 못하며 아이를 씻겼다. 그렇지만 첫째는 못 씻긴다. 이 소리를 듣고 나니 어쩐지 손가락이 아프다는 느낌이다. 이틀째 첫째를 못 씻기니 몹시 미안하다.

 곯아떨어져 자다가 아픈 둘째가 끙끙거리는 소리에 깬다. 옆지기가 고이 달래어 새근새근 재운다. 첫째는 마냥 깊이 잔다. 방바닥에 불을 넣은 김에 똥기저귀를 빨래한다. 방에 새 빨래가 걸리면 조금이나마 덜 메마르리라 생각한다. 오른손가락이 다쳤으니 거의 왼손으로만 빨래한다. 언제나 이렇게 빨래하며 살았으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 천천히 비비고 천천히 헹군다. 빨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다. 모두 곱게 잔다. 다 마른 빨래를 개고, 덜 마른 빨래는 바닥에 넌다. 기지개를 켠다. 새벽 한 시 삼십오 분. (4344.1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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