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는
이토우 히로시 지음 / 그린북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늘 새롭게 달라지는 고마운 내 삶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06] 이토우 히로시, 《구름이는》(그린북,2003)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 해 삼백예순닷새 가운데 똑같은 날이란 없습니다. 구름이 없는 하늘이든 구름이 흐드러지는 하늘이든 구름이 조금 있는 하늘이든 똑같거나 비슷한 날은 없습니다. 아마, 열 해 스무 해 쉰 해 일흔 해를 돌이키더라도, 어느 하루 똑같다 싶은 하늘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낮하늘도 똑같은 날이 없고, 밤하늘도 똑같은 날이 없습니다.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도 똑같은 날이 없으며, 싱그러이 부는 바람도 똑같은 날이 없습니다. 나날이 자동차 늘고 고속도로 늘면서 배기가스 흘러넘칩니다. 매캐한 바람이 온누리를 덮어요. 이런 날씨에 무지개 만나기란 아주 힘듭니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무지개는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제 더는 보기 어려운 무지개인데, 아주 드물게 무지개를 만날 수 있더라도 이 무지개 또한 똑같은 모습인 적은 없습니다.


.. 하늘 위를 날면 여러 가지 멋진 모양을 볼 수 있어요 ..  (2∼3쪽)


 길을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다 다른 자동차라고 느끼는 일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는지 모릅니다만, 나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며 다 똑같은 자동차라고 느낍니다. 너무 많고 너무 빠르며 너무 무섭습니다. 너무 냄새나고 너무 짓궂으며 너무 부질없어요. 사람들은 왜 자동차를 몰아야 할까요. 사람들한테 자동차는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때때로 얻어서 타는 자동차까지 없어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늘 타는 자동차는 없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사람은 걸을 때에 사람입니다. 사람은 땅에 발을 디뎌야 사람입니다. 사람은 푸른 잎사귀 건드리는 바람을 마실 때에 사람입니다. 사람은 깊디 깊은 돌·모래·흙에서 걸러진 물을 마실 때에 사람이에요.


.. 하지만 나는 아무런 모양이 없어요 ..  (8∼9쪽)


 다 똑같은 틀에 맞추고 마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다 똑같은 틀에 끼우고 마는 오늘날 사람입니다.

 어른들부터 다 똑같은 틀에 따라 혼인잔치를 열고 혼인신고를 하며 혼인집을 마련합니다. 혼인살림부터 다 똑같으며, 혼인집이란 아파트 아니면 빌라가 되고 맙니다. 혼인집은 논밭과 멧자락과 바다와 냇물을 곁에 두는 살림집이 아닙니다. 온통 아스팔트랑 시멘트로 범벅이 되는 터에 깃듭니다.

 다 똑같은 틀에 따라 일자리를 얻어 일터에 나가 일손을 잡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계 톱니바퀴 부속품이 되어 일을 합니다. 아니, 일을 한다기보다 돈을 법니다. 다달이 엇비슷하게 돈을 벌되, 다달이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믿음을 길어올리지는 못합니다. 언제나 은행계좌에 숫자를 쌓지만, 막상 고운 넋과 얼과 뜻을 북돋우지 못해요.

 다 다른 사람들이라지만 무엇이 다 다른지 알 길이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옷을 입는다지만, 얼마나 다른 옷으로 얼마나 다른 매무새를 뽐내며 삶을 빛내는지 알 노릇이 없어요. 다 다른 사람들이라지만, 머리속에는 다 같은 지식이 쌓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라면서, 마음속에는 다 같은 정보만 쟁입니다.

 고운 결 사랑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착한 무늬 믿음을 살펴볼 수 없어요. 스스로 굴레에 갇힙니다.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어른이 되면서, 내가 낳을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지 못할 뿐 아니라, 아이들 또한 아이 스스로 굴레에 갇히는 길에 몰아넣습니다.


.. 하지만 어쩌면 아무런 모양이 없는 게 ..  (26∼27쪽)


 이토우 히로시 님 그림책 《구름이는》(그린북,2003)을 읽습니다. 모양이 없다는 ‘구름이’라지만, 구름이는 ‘모양이 없는 모양’으로 살아갑니다. 언제나 다른 모양을 보여줍니다. 아니, 날과 철과 곳과 때에 따라 ‘같을 수 없는 삶’을 일구어요.

 구름이는 구름이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이나 길이나 건물이나 목숨이 ‘늘 같은 모양’인 줄 여기지만, ‘늘 같은 모양인 삶이나 터나 목숨’은 없어요. 늘 다른 모양이요 삶이며 터이자 목숨이에요.

 겉보기로 모양새가 달라진대서 ‘다른 모습’이지 않아요. 마음밭이 나날이 거듭나야 비로소 다른 모습입니다. 마음결이 나날이 새로워져야 바야흐로 새로운 삶이에요.

 아무런 모양이 없을 때에 자연스럽거나 홀가분하거나 살갑지 않습니다. 모양이란 대수롭지 않아요. 꿈이 대수로우며 사랑이 대수롭습니다. 이야기가 애틋하고 삶자락이 어여뻐요.

 오늘은 오늘대로 좋은 삶입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예쁜 날입니다. 글피는 글피대로 고마운 꿈이에요. (4344.11.13.해.ㅎㄲㅅㄱ)


― 구름이는 (이토우 히로시 글·그림,이소라 옮김,그린북 펴냄,2003.2.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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