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그림책 - 그림책을 선택하는 바른 지혜 행복한 육아 15
마쯔이 다다시 / 샘터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밥으로 함께 나누는 책·삶·이야기
 [어린이책 읽는 삶 12] 마츠이 다다시,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



- 책이름 : 어린이와 그림책
- 글 : 마츠이 다다시
- 옮긴이 : 이상금
- 펴낸곳 : 샘터 (1990.6.15.)
- 책값 : 8000원



 (1) 삶과 책


 오리들이 줄을 맞추어 냇물을 가릅니다. 어미 오리를 따라 새끼 오리들이 물갈퀴질을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더 따뜻한 곳을 찾아 헤엄치는 오리들 꽤액꽤액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풀벌레가 풀밭에서 노래합니다. 자동차 오가지 않는 호젓한 시골자락 풀섶에서 수많은 풀벌레가 저마다 노래합니다. 이 나라에서 남녘자리는 한결 따뜻하기에 십일월을 넘어서도 이처럼 풀벌레 노래를 들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늦가을로 접어들며 앙상한 나무가 되는 위쪽 마을에서도 풀벌레는 아직 풀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합니다. 자동차들 매캐한 바람으로 가득한 도시에서도 풀벌레가 목숨을 이으며 풀빛사랑을 노래하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밤 첫째 아이 밤오줌을 누겠다 할 때에 아주 고단한 몸을 겨우 일으켰지만, 그닥 상냥하지 못한 말투로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옛 보금자리 책짐과 남은 살림을 옮기느라 여러 날 몸이 고단하고 짐을 다 옮기며 살가죽과 뼈마디 속속들이 쑤시고 결리는 터라 그만 아이한테 딱딱한 말투로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내 입에서 나온 찬 말씨에 나조차 놀랍니다. 쏟은 물은 담을 수 없듯,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어요. 나는 참 딱한 아버지로구나 싶어 슬픕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아이한테 왜 이렇게 따사로운 가슴을 나누지 못하는가 싶어 괴롭습니다. 이렇게 딱딱하게 굴자면, 뭣 하러 한결 포근하면서 너그러운 새 보금자리로 찾아왔는가 싶어 눈물이 납니다.


.. 끝까지 읽었다고 해서 그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독서란 그 책 속에 쓰여진 내용을 이해하고서야 비로소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책을 읽는 데에는 글자를 읽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그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글자를 읽을 수 있다 해도 독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닐는지요 … 독서란 책을 읽고 있는 시간보다 읽고 난 후의 시간이 더욱 소중한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체험이나 사상과 견주어 보고, 다시 한 번 작중 인물을 생각하는 일은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매우 귀중하고 충실한 시간입니다. 자신을 보는 시간이지요 ..  (8∼9, 15쪽)


 간밤에 빗방울이 조금 들었습니다. 어제와 그제 아침에 빗줄기가 조금 뿌렸다고 합니다. 책짐을 아주 커다란 짐차 석 대에 그득그득 눌러담아 옮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빗방울은 몹시 골치아픕니다. 이 비 때문에 짐차를 책 내릴 곳 앞까지 대지 못합니다. 책 내릴 옛 흥양초등학교 들머리는 옛 학교 빌려쓰는 사람들이 트랙터로 땅을 갈아 나무를 심어서 흙길이 무르거든요. 비가 안 오면 이럭저럭 딱딱해 차가 들어가지만 비가 오면 물컹해서 차바퀴가 빠집니다. 하는 수 없이 실비를 맞으며 등짐을 지고 책을 나릅니다. 밤 열두 시 넘을 때까지 네 시간 남짓 등짐을 나릅니다.

 이삿짐 나르는 일을 하는 일꾼 가운데 둘은 이주노동자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한국까지 와서 이 무거운 책꽂이와 책들을 나르려나요. 이들 젊은 이주노동자는 고향나라에서 무슨 꿈을 꾸며 배우고 살다가 한국에 와서 이 고되고 모진 일을 새로 배워서 하나요.

 이주노동자 두 사람은 몹시 지쳐 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눈이 풀리기까지 합니다. 이주노동자를 부리는 한국사람도 매우 지쳐 숨이 턱에 닿을 뿐 아니라 길바닥에 드러누울 판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길바닥에 드러눕는다든지 어디로 내뺀다든지 못 합니다. 짐차에 실린 책들을 모두 빼내어 나르지 못하면, 저도 일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모두들 헉헉거리면서 조금씩 짐을 나르고 또 날라 깊은 밤에 겨우 일을 끝마칩니다.

 일꾼들을 떠나 보내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이렇게 많은 책을 왜 짊어지고 다니는가 돌아봅니다. 이 많은 책짐이 있기에 우리 식구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 찾아 깃들기 무척 힘들지 않나 헤아립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사랑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짐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따사로운 믿음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은 무언가에 눌리거나 매이거나 휘둘릴 수 없는 고운 꿈입니다.


..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어린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이 자기를 위해 그림책을 읽어 보라는 점입니다 … 어른이 읽어도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 많습니다. 좋은 그림책은 거의 다 어른이 읽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이는 어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그림책은 어린이에게 좋은 책이라고 말합니다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린이가 정말로 좋아하는 그림책은 어른도 아주 즐거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 그림책을 읽고 엄마 자신이 즐거움·기쁨·공감을 느꼈을 때, 우리는 그 기쁨과 즐거움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녀에게 전하고 싶어지겠지요. 읽는 사람이 이렇게 따뜻한 가슴으로 책을 읽어 나가면 엄마의 마음은 당연히 듣는 어린이에게 전달됩니다 ..  (26, 27, 28쪽)


 새 아침을 맞습니다. 지난 5월부터 새 보금자리를 꿈꾸며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책짐을 싸고 집일을 하며 글쓰기를 하던 눈코 뜰 새 없던 하루하루를 돌이킵니다. 이제부터 느긋한 삶으로 느긋한 책과 느긋한 살림을 돌보면서 느긋한 사랑을 꽃피울 수 있을까 가늠합니다. 좋은 보금자리에서 조촐히 지낼 수 있으면, 조촐한 꿈으로 조촐한 글을 누리면서 조촐한 이야기꽃 피울 수 있나 곱씹습니다.

 흙을 아끼는 삶일 때에는 흙을 아끼는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겠지요.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삶일 때에는 이웃과 동무를 아끼는 줄거리 담은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겠지요. 나무를 아끼는 삶일 때에는 나무를 아끼는 넋이 서린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겠지요.

 좋아하는 삶에 맞추어 좋아하는 책이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이야기에 맞추어 좋아하는 삶길이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꿈에 따라 내 일과 놀이가 달라집니다.

 좋아하는 삶이 없을 때에는 좋아하는 책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꿈이 없을 때에는 좋아하는 책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사랑이 없을 때에는 살아가는 보람이 없어요.


.. 훌륭한 그림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읽어 주는 사람이 그 훌륭한 내용을 자기의 것으로 하여 어린이에게 전하는 특권을 가지게 되는 셈이지요 … 언어는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것이며, 또한 언어의 기능은 인간이 인간에게 말을 하는 것이 기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린이는 어른의 언어를 모방하면서 자신의 언어를 획득합니다. 만일, 어른의 언어가 빈약하다면 풍부한 언어를 획득할 수 없지요. 유아의 언어는 어른이 준 표준에 따라 창조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나 레코드로 획득한 언어는 어린이의 마음의 성장을 촉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계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  (57, 59, 122쪽)


 좋은 열매라고 여길 만한 책 하나 가슴에 품으면서 내 삶을 누립니다. 좋은 사랑이라고 느낄 만한 사람 하나 어깨동무하면서 내 삶을 빛냅니다. 좋은 길이라고 믿는 꿈을 시나브로 이루면서 내 삶을 즐깁니다.

 고마운 하루입니다. 고마운 책입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고마운 사랑입니다. 고마운 아이들입니다. 고마운 웃음입니다.

 밝은 햇살로 아침을 맞아들이는 아이들이 맑은 별빛을 올려다보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밝은 햇살 아침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어버이 또한 밝은 햇살 아침 어른이 됩니다. 맑은 별빛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어버이 또한 맑은 별빛 어른이 돼요.

 나는 책삶을 일굽니다. 책으로 일구는 삶입니다. 나는 삶책을 읽습니다. 삶을 갈무리한 책을 즐깁니다.


 (2) 어린이책 읽기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실은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장만합니다. 어여쁜 꿈을 어우러 놓은 어린이책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갈무리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내 나날을 착하게 보듬는 슬기로운 이야기 담은 어린이책을 읽고 나서, 차곡차곡 집안에 갈무리합니다.

 아이들을 낳기 앞서부터 어린이책을 즐깁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 ‘책’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기에 어린이책도 읽고 어른책도 읽어요. 책을 좋아하기에 사진책·만화책·시책·동화책 골고루 읽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린이책은 글로만 이루어지기도 하고,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그림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사진으로 이루어지기도 해요. 그리고, 어린이책은 노래를 함께 담아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찬찬히 돌아보면, 어린이책은 그림책과 사진책이 아주 많습니다. 자연이나 사물이나 사람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책을 찬찬히 살핀다면, 그림과 사진을 어떻게 다루거나 손질하거나 가다듬으면서 책을 빚느냐 하는 얼거리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어린이 눈길과 눈높이를 살펴야 하고,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 어린이 꿈과 사랑을 돌아봐야 하며, 글 한 줄을 쓰면서 어린이 마음과 넋을 읽어야 합니다.


.. 공상력은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가져 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린이의 세계를 보는 입장이 다릅니다 … 나는 원래부터 교육은 어린이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어린이가 나쁜 것이 아니고 어른이 나쁘며, 책이 나쁩니다 … 어른들은 흔히 얼핏 보고 귀엽게 느껴지는 그림이나 눈을 끄는 색채에 더 마음이 끌리는 듯합니다. 그러나 진작 어린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면 어른들의 기호와는 확실히 다른 것을 알게 됩니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가운데는 어른의 눈으로 볼 때 별로 눈에 들지 않는 그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귀엽다’든가 ‘색이 밟고 예쁘다’ 등의 조건이 사실상 중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그림이 얼마만큼 풍부하게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가’이며 ..  (23, 112, 161쪽)


 일본사람 마츠이 다다시 님은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을 내놓습니다. 어린이가 읽는 책에서 그림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책에서 그림이 어떻게 큰 자리를 이루는가를 이야기해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사서 읽힙니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재미있게 느낄까 하고 헤아리기보다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까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아이들 교육과 지성과 감성을 생각합니다. 아이들 꿈과 사랑과 믿음을 생각하면서 그림책을 고르는 어버이는 퍽 드뭅니다. 아이들이 서너 살이나 대여섯 살이나 일고여덟 살뿐 아니라 열두어 살과 열대여섯 살과 스물한두 살에도 즐겁게 펼칠 그림책을 고르지 못해요.

 네 살 어린이한테 알맞다는 그림책은 네 살 어린이만 읽을 그림책이 아닙니다. 네 살 눈높이일 어린이부터 즐길 수 있다는 그림책입니다.

 일곱 살 어린이한테 걸맞다는 그림책은 일곱 살 어린이한테만 읽힐 그림책이 아닙니다. 일곱 살 어린이 눈길일 무렵부터 기쁘게 맞아들인다는 그림책이에요.


.. 그림책의 그림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이야기가 담겨진 그림’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보여주는 일에 지나치게 역점을 둔 디즈니 영화의 질과, 독자에게 찬찬히 이미지를 그려 나가게 하는 문학과의 큰 차이에 나 자신의 어리둥절함이 작용했겠지요.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는 잘텐의 〈밤비〉와 디즈니의 귀여운 〈밤비〉가 엄연히 따로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즈니의 〈밤비〉는 군데군데 어떤 장면을 기억할 수는 있으나, 어미 사슴과 아기 사슴의 사랑의 이야기를 되새기게 하지는 않습니다 … 사람들은 디즈니 그림책을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 색채가 곱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색은 죽은 색입니다. 게다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생생한 움직임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습니다. 죽은 색채와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는 그림, 그것이 디즈니의 그림책입니다 … 그림책은 유아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보아 온 것을 확대경으로 비춰 보았을 때 신선한 발견과 놀라움을 얻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36, 40∼41, 172쪽)


 어버이로서 그림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을 아이가 좋아할까 좋아하지 않을까는 그닥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부터 이 그림책이 내 마음밭에 좋은 이야기밥인가를 생각합니다. 한 장씩 넘기며 생각합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책 하나 건넬 어버이로서, 나부터 좋아하고 즐기는 그림책이 될 때에 우리 아이도 좋아하며 즐길 만한 그림책이 돼요. 나로서는 썩 재미없거나 따분하다는 그림책을 아이가 아주 좋아하거나 즐길 수 없어요. 어버이만 ‘그림책 하나에 서린 어설프거나 모자라거나 얕은 셈속’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그림책 하나에 감도는 어리숙하거나 얄팍하거나 못난 꿍꿍이’를 느껴요.

 좋은 그림책은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아닙니다. 백만 권 넘게 팔릴 만한 그림책이 있고, 십만 권 넘게 팔릴 만한 그림책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힌다 해서 우리 아이까지 읽을 만하다고 여기지 않아요. 첫판이 다 팔리지 않는 그림책이라 하든, 아직 한국에 옮겨지지 않은 나라밖 그림책이라 하든, 사랑스러운 손길을 타지 못한 그림책이라 하든, 나와 아이가 하루하루 고마운 삶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길이면 넉넉하구나 싶어요. 아버지가 드러누워 찬찬히 즐기는 그림책을 바라보던 아이가 아버지 품으로 꼬물꼬물 기어들면서 함께 보고 싶어 하는 그림책이면 좋구나 싶어요. 아이가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제 넋을 고스란히 바치며 들여다보는 그림책이면 아름답구나 싶어요.


.. 억지로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읽게 하거나, 그림책으로 지식을 늘리거나, 글자를 가르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은, 어른이 어린이로부터 그림책의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의 인간적 성장을 비뚤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 정말로 어린이는 객관적으로 책을 읽습니다. 책에 쓰여 있는 대로 그 말과 문자대로 읽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뒤에 숨은 뜻을 파헤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린이를 위한 책은 절대적으로 알기 쉽게 쓰여져야 합니다 … 어린이는 선한 것이 승리한다는 법칙을 옛날이야기 속에서 수없이 확인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성장에 매우 의미 깊은 일이 아닐까요. 이 감각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근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65, 68, 175쪽)


 오줌을 눈 아이 촉촉한 기저귀를 갑니다. 뽀로록 하며 똥을 눈 아이 축축한 기저귀를 갑니다. 온몸이 뻑적지근하더라도 기저귀를 갈아 빨래를 합니다. 날마다 꾸준하게 빨래를 합니다.

 손빨래 하는 우리 집은 날마다 틈틈이 빨래를 합니다. 해가 잘 나는 날은 바깥에 널어 말리고, 저녁에는 방 곳곳에 옷걸이로 걸칩니다. 날마다 꾸준히 손빨래를 하니까 첫째 아이는 곁에서 빨래를 구경합니다. 다 마른 빨래를 걷어 갤 때면, 첫째 아이가 곁에서 “나도 갤래.” 하면서 빨래개기 시늉을 하고 놀이를 하는데, 네 살 아이는 돌배기 때문에 빨래개기 시늉이자 놀이를 하더니 네 살 막바지에 이르러 무척 정갈하게 빨래개기를 해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돌이키면, 참말 쉴 겨를이 없습니다. 그나마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라서 이렇게 집일을 도맡아 하면 ‘그 집 아내는 남자를 잘 만났네’라든지 ‘그 집 여자는 좋겠네’ 같은 말을 듣습니다. 내가 집일을 도맡으면서 좀 엉성하거나 어리숙한 대목을 짚으며 찬찬히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이는 드뭅니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또는 집일을 어느 한 사람이 도맡는 일이 어떠한 삶무게인가를 헤아리려는 사람은 퍽 드물어요.

 옛날 어머니들은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날 어머니들은 책을 얼마나 느긋이 읽을 만한가요. 옛날 어머니들은 책 하나 읽지 못하면서 아이들 가르치거나 돌보는 몫을 어떻게 도맡았을까요. 오늘날 어머니들은 바쁜 틈에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가요.


 (3) 이야기책 《어린이와 그림책》


 마츠이 다다시 님 이야기책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을 생각합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은 ‘그림책을 이야기합’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은 그저 ‘그림책을 이야기합’니다. ‘명작 그림책을 풀이하’거나 ‘유명 그림책을 알리’지 않아요. ‘그림책을 풀어헤치’거나 ‘그림책을 뜯어 살피’지 않습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은 오직 ‘마츠이 다다시 님부터 좋아하는 그림책을 읽’고 나서 ‘마츠이 다다시 님이 아이들이랑 함께 나누’고픈 그림책을 이야기해요.

 마츠이 다다시 님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날마다 차근차근 북돋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지식이나 정보나 학식이나 상식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깊어지거나 역사를 넓게 돌아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마츠이 다다시 님이 그림책을 읽는 까닭은 ‘그림책에 깃든 사랑’을 느끼면서, ‘내 오늘을 이루는 사랑’을 고마이 여기는 넋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언제부턴가 남에게 말을 하고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소중함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그것은 말의 무게가 없어졌고, 말 속의 의미가 가벼워진 탓이겠지요 … 그림책이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공적인 것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깜찍하고 즐겁고 뒷맛이 달콤한 책이 많아졌습니다 … 그러나 어딘가 공허합니다. 그냥 한 번 지나치는 데는 즐겁지만 뒤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달콤한 맛은 남지만 마음속 깊이 남는 공감이 없습니다 ..  (66, 187쪽)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이 한국말로 옮겨진 뒤로 한국에서도 ‘그림책 비평’을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니, 1990년대를 한참 지나고 나서 한국땅에도 비로소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책’이 천천히 나왔고, 이 ‘그림책이라 할 만한 책’을 이야기하는 글이 나와요. 요즈음에는 ‘그림책 비평’이나 ‘그림책 평론’을 퍽 어렵지 않게 찾아 읽을 수 있기도 해요.

 다만, 아직 이 나라에는 ‘비평+평론’은 있으나 ‘즐김+느낌’은 드물어요. 그림책을 즐기는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그림책을 나누는 기쁨을 노래하는 사람은 몹시 드물어요.

 삶으로 바라보는 그림책이 못 되기 일쑤입니다. 삶으로 곰삭이는 그림책을 들려주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삶에서 꽃피우는 그림책으로 되새기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철학그림책이나 자연그림책이란 따로 없습니다. 그저 그림책이에요. 그저 책입니다.

 아이들은 천재도 영재도 귀재도 뭐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예 아이들이에요. 더 잘난 아이나 더 못난 아이란 없어요. 더 잘난 그림책이든 더 못난 그림책은 없습니다.


.. 어린이가 좋아한다는 것은 ‘들어갈 만한 세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 텔레비전이란 기계가 기른 인간은 무엇이 될까요 … 어린이가 만족감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을 어린이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 어린이는 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봅니다 … 그림책은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만드는 책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세계를 어린이의 마음속에 펼쳐 주기 위해 만드는 책입니다. 외형의 호화로움에 눈을 빼앗기지 말고 그 그림이 진정 그 이야기의 삽화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를 간파해야 합니다 ..  (81, 124, 153, 184쪽)


 이야기책 《어린이와 그림책》(샘터,1990)은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이 착하며 참답고 고운 넋을 사랑하는 길’을 ‘그림책에서 어떻게 찾거나 나누거나 즐기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그림책으로 읽는 사랑입니다. 그림책으로 꽃피우는 꿈입니다. 그림책으로 이루는 삶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웃음으로 읽습니다. 그림책 하나는 눈물로 읽습니다.

 그림책은 가슴으로 읽습니다. 그림책은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림책은 온몸으로 읽습니다. 그림책은 따사로운 손길로 아로새깁니다.


.. 어느 날 화가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추위와 어둠과 가난함을 모르고 인간은 성장할 수 없지요. 요즘 아이들은 이 세 가지를 통 모르고 자랍니다.” ..  (128쪽)


 이름난 대학교 이름난 교수한테서 그림을 배운대서 그림책을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그리지 못합니다. 나라밖 이름난 출판사에서 나왔거나 나라밖 이름높은 책잔치에서 상을 받았기에 아이들이 사랑할 만한 그림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마음밥이 될 만한 이야기일 때에 그림책입니다. 마음밥으로 무르익을 만한 삶일 때에 그림책으로 태어납니다. 마음밥답게 나누는 자리에 있을 때에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이 아끼고 어버이인 내가 아끼는 그림책은 몇 권을 다시 사서 간직하다가 이웃한테 선물할 때마다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사랑하고 어버이인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은 낡고 닳을 때까지 펼치거나 넘기면서 고맙습니다. 좋은 꿈을 먹는 좋은 삶을 좋은 손길로 담으니까 좋은 그림책 하나 애틋합니다. (4344.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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