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해만에 비닐 뜯긴 만화책


 오제 아키라 님이 그린 만화책 《술의 장인 클로드》 1권을 읽고 2권째 읽는다. 이 만화책은 2007년에 처음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산 만화책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비닐이 안 뜯긴 채 있던 셈. 2007년에 나왔으면서 용케 판이 안 끊어졌다 할 만해서 놀랍다. 2쇄를 찍지 못했으니 아직 남았다 할 텐데, 곰곰이 살피면, 너덧 해 묵혀 읽히는 책이란 만화책뿐 아니라 글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이 참 많다. 갓 나올 무렵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읽히지 못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처음 나올 때에 보도자료이니 홍보자료이니 하면서 200권 남짓 이곳저곳에 뿌려질 텐데, 보도자료나 홍보자료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받고 나서 차근차근 기쁘게 읽어 주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신문·방송·잡지 기자는 새로 나온 책을 거저로 받으면서 알뜰히 읽어 주려나. 알뜰히 읽고 나서 아름답다 느낀 책을 아름다이 느낌글로 적바림하고, 어딘가 아쉽다 여긴 책은 무엇이 어떻게 아쉬운가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밝혀 주려나.

 가슴으로 읽어 가슴으로 아로새기는 책이다. 눈알을 굴려 글줄을 읽는다지만, 눈알을 거쳐 내 가슴이 움직여야 책을 읽는다. 마음으로 와닿지 않는 줄거리라면 기꺼이 읽는 책이 되지 못한다. 책을 내놓는 사람은 온 사랑을 가득 담을 노릇이요, 책을 맞아들여 읽는 사람은 온 사랑을 넉넉히 누릴 노릇이다.

 아마 열 해나 스무 해만에 비닐 뜯기는 만화책이 있겠지. 헌책방에서 장만하며 서른 해만에 비닐 뜯던 만화책이 있다. 참말 만화책뿐인가. ‘드림’ 도장 찍힌 채 서른 해나 마흔 해를 아주 정갈하게 살아남은 채 헌책방으로 흘러드는 책이라면 서른 해나 마흔 해만에 겨우 첫 쪽을 넘긴다 할 만하다.

 어떤 마음일까. 서른 해 동안 따사로운 손길 기다리던 마음은 어떠할까. 이렇게 오래도록 따사로운 손길 기다리는 책이 있고, 내 곁에는 내가 마음을 제대로 읽으면서 어깨동무하기를 기다리는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가 있겠지. 책을 마음으로 읽듯, 살붙이도 이웃도 동무도 마음으로 읽으며 사귄다. 일은 마음을 바쳐 하고, 놀이 또한 마음을 바쳐 즐긴다. 밥 한 그릇 마음을 쏟아 누리고, 걸레질과 빨래 모두 마음을 바쳐 한다. 내가 좋아할 아름다운 삶을 씩씩하게 되새기자. (4344.1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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