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산다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산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넘어, 아이가 혼자서 수없이 되읽고 싶다며 집어들 만한 그림책일까 아닐까 혼자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림책을 산다.
시골마을에 책방이 알뜰히 있어, 너른 그림책을 두루 살피면서 장만할 터전이 있다면, 아이는 오래오래 되읽을 그림책을 얻을 수 있을까. 면내에 책방이 없고, 읍내에는 나가기 힘드니까 두 다리로 책방마실을 할 꿈을 꾸기조차 힘들다. 집에서 셈틀을 켜고 누리책방에서 이럭저럭 괜찮겠거니 생각하며 그림책을 고른다. 소포꾸러미를 받아서 풀 때에 참 좋다고 느끼는 그림책이 있지만, 아이도 어버이도 좀처럼 손이 안 가고 마는 그림책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참 많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좁다.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참 쉽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들 그림책은 이야기가 무척 깊으며 넓다. 어른들 인문책은 이야기가 너무 틀에 박힌다.
왜 어른들 읽는 책은 아이들 읽는 책처럼 더 넓은 갈래를 다루지 못할까. 왜 어른들 읽는 책은 지식조각과 정보조각 그러모으는 데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까. 아이들 그림책이 지식조각이나 정보조각으로 넘치면, 어느 아이라도 따분해 한다. 아이한테 그림책 읽히는 어른도 이런 그림책은 재미없다. 지식이든 정보이든 이야기에 스며들어야 한다. 지식이나 정보는 이야기에 녹아들어야 한다. 삶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숨쉬어야 하고, 사람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아이가 읽을 그림책을 산다. 아이하고 즐길 그림책이기도 할 테지만, 어른인 내 마음을 살찌울 그림책을 산다. 아이가 오늘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면서,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에 읽어도 좋을 그림책을 산다. 오늘 장만해 놓지 않으면 아이가 앞으로 스무 살이 되거나 서른 살이 된 다음에는 구경할 수조차 없을 그림책을 아버지한테 돈이 조금 있을 때에 한 권이라도 더 장만한다. (4344.10.31.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