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는 어머니 안는 아이


 뒤집기에 이어 목가누기를 할 줄 아는 둘째 아이를 곧잘 무릎에 앉힌다. 모두들 우리 집 둘째 아이는 기기를 건너뛰고 서기를 할 듯하다고 말한다. 첫째 아이를 떠올린다. 첫째 아이도 기기를 건너뛰고 서기부터 했다.

 엊저녁 새 보금자리에서 처음으로 만화영화를 본다. 새 보금자리 인터넷은 끊기지 않는다. 이렇게 끊김 없이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니 눈물겹다. 이제 다섯 달이 갓 넘은 둘째 아이는 화면에 흐르는 모습을 말똥말똥 쳐다본다. 아버지가 낮에 셈틀을 켜고 일할 때에도 무릎에 앉고는 곰곰이 바라본다.

 첫째 아이는 백일 무렵부터 제 아버지가 사진찍기를 하는 줄 알아차렸다고 느낀다. 첫째 아이는 노상 사진기 단추를 누르는 아버지를 수없이 바라보다가는 여섯 달이 조금 안 될 무렵부터 아버지 사진기를 만졌다. 둘레에서는 아버지 사진기를 만지다가 망가뜨린다고 걱정했지만 그대로 두었다. 첫째 아이가 여섯 달을 조금 지날 무렵 사진기를 만진다 하더라도 망가뜨릴 일은 없으리라 믿었다. 예전에 쓰던 무거운 렌즈 붙은 사진기를 첫째 아이는 돌이 되기 앞서 두 손으로 낑낑 들고는 사진을 찍었다. 첫째 아이는 그 뒤로 이제껏 아버지 사진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일이 없다. 아마 나이가 제법 든 다음에는 떨어뜨릴는지 모르나, 어린 나날에는 떨어뜨릴 일이 없으리라 느낀다.

 둘째 아이도 저희 누나처럼 머잖아 아버지 사진기 단추를 누를 날을 맞이할까. 둘째 아이도 돌이 되기 앞서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까. 아버지가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니니 아이도 시나브로 사진찍기에 익숙할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늘 공책과 볼펜을 챙겨 글을 쓰니 아이도 차츰차츰 글쓰기에 젖어들는지 모른다.

 새 보금자리 손질에 한창 바쁜데 옆지기가 까르르 웃으며 나를 부른다.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옆지기가 첫째 아이를 안고, 첫째 아이는 동생을 안는다. 셋이 나란히 앉아서 ‘안기 놀이’를 한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둘째를 낳을 무렵부터 새 보금자리를 찾느라 책짐을 꾸리고 바깥마실을 자꾸 다녀야 하는 한편, 집살림을 꾸리고 옮기며 푸는 일로 바쁘다. 벌써 여섯 달째 이렇게 살아간다. 여느 때에도 아이들하고 더 살가이 복닥이지 못하며 지냈는데, 짐을 꾸려 집을 옮기자며 더 어우러지지 못한다. 여느 사람들은 ‘바깥일로 바쁜 아버지가 너무 힘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힘들다면 ‘집에서 아이들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어우러지면서 사랑을 나눌 겨를을 제대로 못 내는 일이 힘들다’고 해야 맞다. 집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들하고 꾸준하게 사랑을 나누는 옆지기가 제대로 살아간다고 해야 맞다.

 이 힘든 날을 날마다 벅차게 보내고 나면, 어느새 첫째 아이 팔뚝에 힘이 꽤 붙고 첫째 아이 키와 몸집도 퍽 자라서, 아버지 혼자 도맡는 집일을 조금씩 나누어 맡을 수 있겠지. 엊저녁 첫째 아이를 씻기며 아버지는 빨래를 하고 아이는 혼자 낯과 손을 씻는데, 아이가 “벼리는 빨래 못 해. 아버지가 빨래 해.” 하고 말한다. 나는 “그래, 아버지는 빨래를 하는데, 앞으로 벼리도 커서 빨래를 함께 해 줘.” 하고 대꾸한다. (4344.10.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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