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빛가루를 바라보는 저녁나절


 보름달은 새하얀 빛가루를 온누리에 고루 흩뿌립니다. 커다란 도시에서는 수많은 가게와 자동차가 내뿜는 등불이 새하얀 빛가루를 몰아내지만, 고즈넉한 멧골자락에서는 눈부신 빛가루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나는 이 빛가루를 느끼는 깊은 저녁나절, 새 보금자리로 옮길 살림을 헤아리면서 짐을 꾸립니다. 도서관 책짐은 일찌감치 쌌고, 살림집 짐은 조금씩 싸다가 오늘 꽤 많이 싸는데, 이듬날 새벽 새 보금자리 살림집 계약을 하러 가야 하기에 조금 드러누워 등허리를 쉰 다음 다시금 짐을 꾸려야지요.

 걸레를 수없이 빨고 다시 빨면서 짐을 싸고 방바닥을 쓸고 닦습니다. 옮겨야 할 집이기에 이래저래 집을 비우며 새 보금자리를 알아보느라 집 청소를 제대로 못하며 지냈습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가 장인·장모님 댁에서 돌아올 모레부터 며칠이나마 오붓하게 마지막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묵은 먼지를 닦습니다. 옆지기와 내 이름으로 처음으로 장만해 볼 새 보금자리에서는 오래오래 뿌리내리면서 우리 나무를 심어서 가꾸고, 나중에 돈을 모아 우리 밭과 풀숲을 보듬을 수 있으리라 꿈꿉니다. (4344.10.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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