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69 : 한글날맞이 이야기책
올해에도 한글날은 있습니다. 한글날이 국경일이든 기념일이든 공휴일이든, 어찌 되든 한글날은 있습니다. 한글날 하루가 빨간날이 된대서 더 거룩히 여기지는 않으나, 한글날 하루가 까만날이기만 하대서 더 어설피 깎아내리지는 않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한글날 즈음, 우리 말글을 다루는 이야기책 몇 권 태어나곤 합니다. 올해에는 저도 우리 말글을 이야기하는 책 하나를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습니다. 굳이 한글날에 맞추려 하지는 않았으나 한글날에 맞추어 한겨레 말글을 기리거나 돌아보는 일은 뜻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글날에 맞추어 한겨레 말글을 기리거나 돌아보는 책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그닥 다루어 주지 않습니다. 다룬다 한들 한글날 언저리에서 살짝 스치듯 다루고 끝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뿐 아니라, 여느 삶을 일구는 수수한 우리들부터 여느 때에 우리 말글을 참다이 사랑하거나 착하게 아끼거나 곱게 북돋우지 않아요.
신문사 기자나 방송국 피디한테만 ‘여보시오. 누구보다 당신들이 우리 말글을 아껴야 하지 않소?’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초·중·고등학교 교사라든지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라든지, 국어사전을 엮는 사람이라든지, 국립국어원 공무원이라든지, 한글학회 일꾼이라든지, 이와 같은 사람들끼리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북돋울 한겨레 말글이 아니에요. 아주 마땅한 노릇이지만 아주 마땅히 잊고 마는데, 이 땅에서 지식인이나 전문가만 한국말을 나누거나 한국글을 쓰지 않아요.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많이 배운 사람이건 적게 배운 사람이건, 누구나 한국말을 나누고 한국글을 써요.
한글날이기에 한겨레 말글 이야기를 더 돌아보거나 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내내 한겨레 말글 이야기를 알뜰히 돌아보면서 살펴야 합니다. 어린이날 하루만 내 아이와 이웃 아이를 사랑해도 될까요? 어버이날 하루만 내 어버이와 이웃 어르신을 섬기면 되나요? 한 해 내내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섬기는 넋으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를 보듬어야 할 삶입니다. 한 해 내내 늘 아끼고 사랑하며 섬길 한겨레 말글이에요. 한 해 내내 우리 집 밥차림을 살피고, 한 해 내내 우리 집 살붙이 마음을 어루만지며, 한 해 내내 우리 집 살림을 가꿔야 해요.
‘우리 말글 달인’이 안 되어도 됩니다. 참말로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틀려도 됩니다. 나 스스로 어떠한 삶을 사랑하면서 한길을 예쁘게 걸어가는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해요. 내 삶길을 씩씩하고 아름다이 일구면서 이웃과 살붙이와 동무하고 나눌 어여쁜 말글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야 해요.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하는 아름다운 넋이요, 아름다운 넋에서 꽃피우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아름다운 말을 사랑할 때에 아름다운 글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책 하나 알아보면서 껴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아름다운 땀으로 일구려 할 때에 아름다운 빛을 느끼면서 아름다운 씨앗 하나 내 보금자리 깃든 조그마한 마을에 살포시 심습니다. (4344.10.7.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