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물 빨래


 부산과 고흥을 열흘에 걸쳐 돌다가 거창을 지나서 충주 멧골자락 살림집으로 돌아온다. 더 오래 머물며 새 보금자리를 얻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가 손에 쥔 돈으로는 선뜻 어찌저찌 마음을 굳히지 못하고 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를 놓고 하루쯤 망설인 뒤, 나 혼자 고흥으로 찾아가서 집과 땅을 마련한 다음, 고치고 손질해서 사람이 들 만하도록 해서 옮겨야지 하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옆지기가 바깥잠을 오래 자는 바람에 몹시 힘들어 하기에 충주 멧골자락 살림집에서 며칠이라도 쉬려고 한다. 그런데, 열흘 비운 집에 돌아오니 물이 나오지 않는다. 전기가 끊어지지 않았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 양수기를 요모조모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지만 도무지 물이 나오지 않는다. 누가 양수기를 어떻게 건드렸을까.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멧골집에서 아이들과 옆지기가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어쨌든 하룻밤 고단하게 잔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하기로 한다. 새벽녘, 홀로 조용히 일어나서 집 앞 도랑물에 기저귀를 빨래한다. 두 장째 빨래할 때에 손이 얼어붙는다. 시월하고 이틀째인데, 멧골자락 도랑물은 이토록 시리구나. 오줌으로 옴팡 젖은 기저귀 여섯 장을 가까스레 헹군다. 마당 빨랫줄에 넌다. 일요일인 오늘 읍내로 가서 어찌저찌 해 보아도 안 되면 물을 쓸 수 있는 어디로든 옮겨 지내야 한다. 집식구들이 몹시 힘들겠구나. (4344.10.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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