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망가진 사진기와 렌즈


 내가 쓰는 디지털사진기는 2008년 6월에 만들었단다. 나는 아마 2008년 7월 무렵부터 이 녀석을 썼으리라. 2008년 7월 무렵부터 쓰던 사진기는 2010년 6월에 된통 맛이 갔다. 한창 신나게 사진을 찍는데 먹통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살림에 겨우겨우 장만해서 쓰던 렌즈는 2009년 여름에 먹통이 되었다. 이때에도 한창 사진을 찍다가 먹통이 되었는데, 렌즈회사 수리점에 맡기니 ‘새로 사는 값만큼 고치는 값이 나온다’고 해서 새로 하나를 장만해야 했다. 이제 2011년 10월에 이르러 사진기와 렌즈가 나란히 먹통이 된다. 새 보금자리를 찾아 전라남도 고흥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길에 사진기와 렌즈가 나란히 먹통이 된다.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려면 집값과 땅값으로 치를 돈이 몹시 빠듯할 뿐 아니라, 충북 음성에서 전남 고흥까지 짐차를 불러 짐을 옮기는 값 또한 아주 벅찬데, 새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할 수 있을까. 디지털사진기 몸통은 아무래도 너무 낡아 아예 새로 사야 할 듯한데, 새로 나온 650디인가 하는 제품이 아니라 내 손에 가장 잘 맞는다고 여기는 450디라는 제품을 찾아서 장만할 수 있을까.

 새 보금자리를 찾아 고흥마실을 하는 동안, 여관에서 둘째가 뒤집기를 해낸다. 뒤집기를 하는 모습까지는 사진으로 담았다. 엊저녁, 둘째가 몹시 귀여운 얼굴로 뒤집으며 입을 쩍 벌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 이렇게 귀여운 얼굴도 찍을 수 없어요.” 하고 말한다. 한동안 그야말로 ‘찍고 싶어도 못 찍’는 나날이 된다. 참말 어찌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브레송은 라이카라는 사진기로 당신 빛느낌을 담았다면, 나는 디지털사진기 가운데 450디 하나만이 내 빛느낌을 담을 수 있는데, 디지털사진기는 필름사진기와 달리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쓸 만큼 튼튼하거나 야무지지 않은 줄 알기는 했지만, 참말 어떡해야 할까 모르겠다. 먹통이 되어 아주 무거운 짐이 되고 만 사진기와 렌즈를 가방에 깊이 모실 뿐, 머리가 띵하고 멍하다. (4344.10.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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