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못 살겠다


 충주 멧골집을 떠나 부산에 닿는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에 섞이면서 대전역에서 고속열차로 갈아탄다. 길디긴 고속열차에 올라 많디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앉은 칸을 가로지르며 걷는다. 음성역을 떠난 무궁화열차는 맨 끝 역에 이르러 갑자기 늦어지며 그만 갈아탈 열차를 놓칠 뻔했다. 한숨을 돌리면서 우리 자리를 찾는다. 부산역에서 내릴 때에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1분이 채 되지 않아 열차가 선다. 무궁화열차는 안내방송이 나오고도 서다 가다 하며 한참 힘들게 하고, 고속열차는 있으나 마나 한 안내방송 때문에 부랴부랴 짐을 꾸리고 아이를 안아 밖으로 나온다. 넓디넓은 부산역으로 나온다. 쏟아지는 가게와 쏟아지는 자동차와 쏟아지는 소리 틈바구니에서 첫째 아이가 어디로 휩쓸릴지 걱정스럽다. 자칫 아이를 놓쳐 길을 잃을까 근심스럽다. 관광안내소와 백화점안내소와 부산역안내소 세 군데를 들러 ‘미아방지용 팔찌’ 같은 것을 장만할 데가 있느냐고 묻지만, 다들 모른단다.

 저 멀리까지 줄을 선 택시를 본다. 하나를 얻어 탄다. 짐을 싣는다. 짐을 짐칸에 다 안 실었는데 택시 일꾼은 일찍 짐칸 문을 닫는다. 음성에서 택시를 탈 때하고 아주 다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느긋하게 안 될까. 아버지 품에 안겨 앞자리에 앉은 아이가 “차가 많아.” 하고 말한다. 아버지하고 읍내 장마당에 나올 때에 읍내 자동차를 보고도 ‘많다’고 말하던 아이한테 부산 시내 자동차는 얼마나 많은 숫자와 크기가 될까. 이 자동차 물결에 나도 한몫 끼면서 오직 다른 자동차 소리와 내가 얻어 탄 택시 소리만 듣는다. 우리가 얻어 지낸 충주 멧골집 마당은 시멘트 바닥이요, 맨 흙길을 찾아 걷기에 만만하지 않았지만, 찻길 바로 안쪽은 모조리 흙인데, 이곳 부산과 같은 데는 찻길 둘레도 아스팔트나 시멘트요, 집 둘레나 가게 언저리나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이다. 흙먼지 뒹구는 길은 아예 없다. 찻길 두 편으로 나무를 줄줄이 심은 일이 놀랍다고 할 만하다. 이 나무들이 죽지 않고 목숨을 잇는 일이 대단하다 할 만하다.

 이 놀랍고 대단한 나무를 가만히 올려다보면서 살그머니 줄기를 쓰다듬거나 어루만질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무가 뿌리내린 조그마한 흙 둘레에 씨앗을 퍼뜨려 애써 고개를 내밀 여느 풀은 얼마나 될까.

 배고프고 졸린 첫째와 저녁밥을 먹는다. 경상도사람이건 전라도사람이건 목소리가 크겠지. 충청도에서 지낼 때에는 읍내 밥집에서 이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사람을 못 보았다. 귀가 멍멍하다. 밥집에서 나올 때에 옆지기가 아이를 바삐 부른다. 아이는 그냥 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 밥집 바깥은 바로 찻길이라 아이가 함부로 나가면 안 된다. 도시 자동차는 어린이를 잘 살피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는 여기이든 저기이든 아이들이 많으니까, 시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데가 아니니까, 시골에서는 갓난쟁이가 되든 네 살 첫째가 되든 나란히 읍내 마실을 다니면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마다 아는 척을 하며 아이한테 인사를 하는데, 이 커다란 도시에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나.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더더구나 이 아이들을 눈여겨보거나 고이 헤아리기 어렵다.

 자동차가 지나갈 만한 넓이일 뿐이라, 사람들은 골목길 가장자리에 바싹 붙어서 이맛살을 찌푸린 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사람들 마음 흐름대로 걷거나 움직일 수 없다. 자동차 눈치를 살펴야 한다. 자동차에 따라 멈춰야 하고 자동차에 따라 에돌아야 하며 자동차에 따라 귀가 따가와야 한다.

 문득 옆지기가 말한다. “도시에서는 못 살겠지요?” 시골집을 나서서 커다란 도시로 들어선 하루, 옆지기 이 말 한 마디를 내내 가슴에 아로새긴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이렇게 시끄럽고 이렇게 걱정스러운 곳에서 아이하고 즐거이 살 수 없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책잔치가 있으니 찾아와서 책누리를 즐기지, 이 헌책방골목이 아니라면 이곳 부산 어디에서 숨통을 틀 수 있을까.

 사람들 앞에서는 ‘옆지기 몸이 몹시 나빠 시골로 집을 옮겼어요’ 하고 이야기하지만,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착하게 건사하기 힘들다.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따스히 돌보기 벅차다. 나부터 이 도시에서는 마음을 사랑스레 아끼기 힘겹다.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아이 손을 힘껏 붙잡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아이를 살가이 껴안고 아이가 마음껏 뛰놀도록 보금자리 사랑스레 일구는 아버지로 살아가고 싶다. (4344.9.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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