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McCurry; The Unguarded Moment : Thirty Years of Photographs by Steve McCurry (Hardcover)
McCurry, Steve 지음 / Phaidon Inc Ltd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살뜰한 사랑을 담는 밥그릇 같은 사진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6]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the unguarded moment》(PHAIDON,2009)


 수천만 대까지 팔린 사진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수백만 대 넘게 팔린 사진기는 꽤 됩니다. 일본 니콘이나 캐논에서 만든 사진기 가운데에는 지구별 곳곳에 수백만 대가 퍼질 만큼 널리 사랑받은 사진기가 있습니다. 수백만 대 만들어진 사진기는 수백만 사람 손을 거쳐 수백만을 웃도는, 아니 수억만에 이를 사진을 빚습니다. 수억만이라는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도록 어마어마하게 많다 싶을 사진이 지구별 곳곳에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두루 알려진 작품이 있고, 하나도 안 알려진 작품이 있습니다. 두루 알려지기는 했으나 그닥 살갑지 못하다 싶은 사진이 있을 테며, 하나도 안 알려졌으나 더없이 살가우며 애틋한 사진이 있을 테지요.

 사진기는 많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도 많습니다. 사진 또한 끝없이 새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이 많은 사진기로 일구는 이토록 많은 사진 가운데 사진쟁이 가슴부터 촉촉히 적시는 살뜰한 사랑 깃든 사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사진기로 찍으면 사진이 만들어집니다. 어떠한 사진이든 모두 사진입니다. 그런데, 찍기는 찍었으되 사랑하는 넋을 담지 못했을 때에도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책을 읽기는 읽었으되 책에 서린 사랑스러운 넋을 가슴으로 삭여서 내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에도 책읽기라는 이름이 걸맞을 만한가 궁금합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가공식품으로 이루어진 밥이든 손수 일군 곡식과 푸성귀로 지은 밥이든, 어떤 밥이든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어찌 되든 배가 부르면 기운을 차립니다. 좋은 밥을 먹든 나쁜 밥을 먹든 배가 부르면 일어나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살림이 팍팍한 나머지 좋은 밥이나 나쁜 밥을 가릴 겨를이 없이 배만 채우면서 일하는지 모릅니다. 배채우기로도 벅차기에 아름다운 삶이나 따사로운 사랑이나 너그러운 믿음을 건사할 겨를이 없다 할는지 모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찍다가는 나와 내 살붙이 모두 굶어죽을까 걱정스러우니까 ‘돈벌이 되는 사진을 찍’든지 ‘돈벌이 되는 다른 일거리를 찾’든지 해야 한다고 여기곤 합니다. 이리하여, 사진길을 사진쟁이로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사진밭에 사진꿈을 키우려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님은 《the unguarded moment》(PHAIDON,2009) 같은 사진책을 내놓습니다만, 스티브 맥커리 님이 빚는 사진으로 보이는 ‘빛깔 느낌’을 흉내내거나 따르는 사람만 많을 뿐, 정작 스티브 맥커리 님이 왜 ‘스티브 맥커리 사진 빛깔 느낌’을 선보이면서 이야기 한 자락 나누려는지까지 톺아보지 않아요.

 사진책 《the unguarded moment》는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사진 하나는 밥그릇 하나와 같을 수 있을 때에 아름답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사진 하나를 읽을 때에 밥그릇 하나를 비우며 배부를 수 있도록, 마음을 부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사진 하나를 찍을 때에 밥그릇 하나에 따순 사랑을 담아 살뜰한 밥차림이 될 수 있게끔 애쓰듯, 마음을 살찌우는 따순 사랑을 담아 살뜰한 사진넋이 꽃피어야 한다고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사진은 사랑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내 몸과 마음부터 아끼는 사랑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내 몸과 마음부터 아끼는 사랑을 밑바탕으로 깨달아, 내 이웃사람들 몸과 마음을 어떻게 보살피거나 보듬으면서 아끼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고 헤아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밥 한 그릇 내밀지 못합니다.

 사랑을 느끼기를 꿈꾸면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사랑을 느끼기를 바라면서 밥 한 그릇 소복히 담아서 내밉니다.

 무르익는 가을날, 귀뚜라미는 하루 내내 쉬지 않고 웁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집 둘레 풀밭에서 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하고 뒤섞이면서 내 몸과 마음으로 촉촉하게 젖어듭니다. 사랑스러운 울음소리요, 어여쁜 목숨결입니다. 시골자락 작은 집에서 네 식구 옹기종기 복닥이는 살림을 꾸리는 애 아빠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같은 밥을 차리자고 생각하고, 풀벌레 울음소리와 같은 사진을 찍자고 다짐합니다. (4344.9.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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