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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이일우 지음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살아가는 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59] 이일우,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팝콘북스,2006)
살아가는 대로 느끼면서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살아가는 대로 깨달으며 찍는 사진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결을 스스로 어떻게 일구거나 여미거나 다스리거나 돌보는가에 따라, 내 눈길로 읽는 사진과 내 손길로 찍는 사진이 거듭납니다.
내 눈길이나 손길은 맨 처음에는 아주 서툴거나 엉성하거나 투박할 수 있습니다. 서툴다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서툴 때에는 서툴 뿐입니다. 엉성하대서 모자라지 않습니다. 엉성할 때에는 엉성할 뿐이에요. 투박한 눈길이나 손길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투박하게 읽으면 투박하게 읽는 대로 나한테 기쁘며 좋은 사진입니다. 투박하게 찍으면 투박하게 찍는 대로 내게 보람차며 반가운 사진이에요.
사진길을 뚜벅뚜벅 걷다 보면, 처음에는 서툴던 눈길이나 손길이 차츰 단단해지기도 하고 야물차기도 합니다. 엉성하던 매무새가 짜임새를 갖출 수 있고, 투박하던 사진이 매끄럽거나 멋스러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다 좋습니다. 사진은 반드시 야물차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서툴어도 됩니다. 사진은 꼭 짜임새가 빼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엉성해도 됩니다. 사진은 어김없이 멋스럽거나 예뻐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투박해도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느낌은 그닥 대단하지 않습니다. 초점이나 셔터빠르기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흔들려도 좋고 어긋나도 괜찮아요.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을 때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는 깃들지 않으면서 멋스러이 보이기만 한다면 사진이 아니에요. 빈 껍데기입니다. 이야기를 담지 못하면서 예쁘장하기만 한다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덧없는 겉치레입니다. 이야기를 즐거이 살아내지 않으면 사진하고 동떨어져요.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팝콘북스,2006)라는 책을 내놓은 이일우 님은 대학교 사진학과를 나오고, 독일로 사진을 배우러 다녀왔지만, 처음부터 ‘사진을 알’거나 ‘사진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니, ‘사진으로 살아가지’조차 못합니다. “나는 단지 경제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충무로에 있는 작은 잡지사 사진기자로 취직을 했다(10쪽).”라는 말마따나,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를 뿐더러, 사진으로 삶을 일구는 길을 영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사진을 작업하지 않고 머리로만 공부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11쪽).”고는 느낍니다.
이리하여, ‘몸(실천과 행동)’으로 찍지 않고 ‘머리(지식과 이론)’로 찍는 사진을 털어내려 애씁니다. 꾸준히 애쓰면서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매일 걸어다니는 길 위에 이미 있다(20쪽).” 하고 깨닫습니다. 적어도 ‘사진길 첫걸음’은 떼는 셈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게 아니라 사진가가 찍는다는 사실이다(25쪽).” 하고 다짐하듯, 이제 막 아장걸음을 뗍니다.
한국에서 사진찍기를 한다는 이들 가운데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털어놓으면서 새로 태어나고자 애쓰는 분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느끼며 바라보는 사진인데, 스스로 내 삶부터 얼마나 아름다이 여미려고 힘쓰는지 궁금합니다. 내 삶을 알차고 사랑스레 돌볼 때에 내 사진 또한 시나브로 알차며 사랑스러울 수 있는 줄 느끼는 분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해요.
이일우 님은 “자연은 내 노력에 비해 훨씬 큰 것들을 준다(46쪽).” 하고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말을 꺼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이 황량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무엇을 사진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앞에 있는 게으름뱅이 낙타처럼 이곳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사물들에서도 사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12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자연이 얼마나 크나큰 선물을 베푸는가를 조금 깨달았다고 하면서, 막상 사막으로 사진마실을 다녀오는 동안 ‘자연이 베푸는 선물’을 제대로 맛보지 못합니다. 아니, 자연이 선물을 베푼다고 느끼지 못해요.
무엇을 사진으로 옮겨야 할지 걱정하지 마셔요. 내 가슴으로 느끼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으면 돼요. 낙타가 게으름뱅이라고요? 낙타를 사진으로 담아 이야기 하나 길어올리지 못하는 사진쟁이가 게으름뱅이예요. 낙타한테서, 낙타를 모는 일꾼한테서, 사막에 가득한 모래에서, 사막을 내리쬐는 햇살에서, 뜨거운 바람에서, 작은 샘과 풀포기에서, 차근차근 사막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어떠한 사진넋도 태어나지 못합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닙니다. 내 삶그릇만큼 내 사진그릇입니다. 내 삶길과 같은 내 사진길입니다. 내 삶눈에 따라 내 사진눈입니다. 내 삶넋으로 이루어지는 내 사진넋입니다. (4344.9.18.해.ㅎㄲㅅㄱ)
― 내 인생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 (이일우 글·사진,팝콘북스,2006.10.23./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