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숲 어린이
시골마을에서 읍내로 가려면 시골버스를 타러 논둑길을 걷다가는 커다란 느티나무 앞에서 기다린다. 이 느티나무 둘레로는 온통 시멘트로 마감을 해서 자동차를 세우기 좋도록 했다. 해마다 수많은 느티씨가 떨어지지만 시멘트땅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는다. 그래도 느티나무 굵직한 줄기 가까이에서 새로운 느티싹이 돋아 어린 느티나무로 자란다. 이들은 머잖아 풀약을 먹고 죽지만,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서는 우람한 느티나무처럼 자라고픈 어린 느티나무들이 천천히 제 목숨을 돌본다.
시골버스역 둘레 풀숲에서 아이가 논다. 따로 어머니나 아버지를 부르지 않고 홀로 풀숲을 살며시 밟으며 꽃이나 풀줄기를 꺾는다. 우리 아이가 풀숲 어린이로 살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좋다. 우리 아이가 풀숲 어린이 아닌 스마트폰 어린이가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읍내로만 나와도 우리 아이는 갖가지 전자제품과 물질문명을 마주해야 한다. 하루 빨리 깊은 시골자락으로 들어가고 싶다. (4344.9.17.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