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빨래


 한가위를 맞이해서 네 식구가 찾아온 할머니·할아버지 댁에서 할머니 일을 아주 조금만 거들면서 둘째 갓난쟁이 기저귀를 빨거나 품에 안아 어르느라 바쁘다. 첫째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하는 말은커녕 할머니가 하는 말조차 거의 듣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뛰놀기만 한다. 한가위에도 빗줄기는 그치지 않아 빨래가 아주 안 마른다. 온 집안에 둘째 천기저귀가 가득 널린다. 스무 장 가까이 널렸을 때에 도무지 안 되겠구나 싶어 다리미를 든다. 다리미를 들어 석 장쯤 말릴 때에 새 오줌기저귀가 나온다. 이럭저럭 다섯 장을 다리미로 말리는 동안 오줌기저귀가 두 장 나온다. 아득한 옛날까지는 아닐 내 어머니 젊은 날, 한가위날이나 설날이나 제삿날에 어린 아이들 돌보기와 갓난쟁이 기저귀 빨래에다가 집일이랑 숱한 먹을거리 장만하기를 어떻게 한꺼번에 치를 수 있었을까. 아버지들 가운데 이 숱한 일 가운데 한 가지라도 도운 사람이 있었을까. 어머니들만 이 숱한 일을 홀로 치러야 했을까. 어머니들끼리 치를 이 숱한 일을 어머니들이 서로서로 조금씩 돕고 거들면서 살아냈을까. 아버지들은 이 숱한 일 가운데 어느 한 가지조차 제대로 건사하거나 맡거나 나누지 않으면서 무슨 거룩한 역사나 정치나 문화나 예술이나 사회나 경제나 교육이나 철학을 세웠을까. (4344.9.1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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