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책읽기 3


 시외버스를 타고 바깥으로 볼일을 보러 움직이는 길이기에, 퍽 느긋하게 책을 펼칠 만합니다. 집에서는 온갖 집일을 하면서 아이랑 부대껴야 하니, 어느 한때조차 느긋하게 책을 펼치지 못합니다. 첫째 아이가 얌전하고 조용하게 그림책을 들여다보는 동안 둘째 아이가 새근새근 잠자면, 아버지도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면서 몇 쪽이나마 펼칩니다. 아버지가 그림책을 읽으면 첫째 아이는 뽀로롱 달려와서 아버지 무릎에 앉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서 가방에서 책을 꺼냅니다. 시외버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선 채로 책을 읽었습니다. 멧골집에서 나와 시골버스 타는 데로 걸어오는 동안, 또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긋나긋 울려퍼지는 가을날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노랫소리는 시골버스를 탈 때부터 더는 들을 수 없고, 읍내에 닿은 다음부터는 꿈꿀 수 없습니다. 서울로 달리는 시외버스는 살가운 흙내음하고는 동떨어진 차가운 시멘트내음하고 가까워집니다.

 바람을 가르는 큼지막한 버스가 내는 소리가 귀에 울립니다. 맞은편 찻길을 내달리는 수많은 자동차가 바람을 가르는 무서운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에어컨 소리가 들리고, 버스 일꾼이 켠 라디오 소리가 들립니다. 빠르게 달리는 버스가 덜덜 내는 소리가 들리며, 바퀴가 아스팔트를 찍는 소리랑 엔진이 부릉부릉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가용 있는 집 아이들은 늘 이런 소리를 끼고 살아야겠지요.

 온누리는 온통 수많은 기계와 자동차와 전자제품이 내는 소리들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피면 커다란 도시 한복판을 둘러싼 곳에서만 이러한 소리일 뿐, 아직 훨씬 더 넓은 들판과 멧자락에서는 흙내음 소리랑 햇살 소리랑 바람결 소리와 푸나무 소리입니다. 나는 나부터 내 몸에 걸맞지 않을 뿐더러, 내 몸을 힘들게 하는 소리를 즐기고 싶지 않으며, 이 소리를 우리 아이들이 물려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골이 띵하지만 시외버스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한손으로 이마와 뒷통수를 꾹꾹 누르면서 책읽기를 합니다. (4344.9.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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